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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영상 ❬고대 중국의 텍스트 형성과 전승: 『논어』의 사례연구(case study)를 통한 비판적 접근❭

김광림 김광림 Jul 26, 2023
강연영상 ❬고대 중국의 텍스트 형성과 전승: 『논어』의 사례연구(case study)를 통한 비판적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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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빈동철 박사님의 강연 후기는 중국 고대사와 문헌학을 공부하는 이정우 선생님이 기고를 해 주셨습니다. 강연 영상 시청에 앞서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무더위 속에 들이킨 논어 한 모금: 빈동철 선생님 강연 후기

이정우

논어는 한문 초심자들이 항상 거쳐 가는 책이다. 서당 교육을 받은 세대는 아니었지만, 1년 남짓 서당식에 가깝게 사서(四書)를 공부했었던 필자는 논어를 외울 때의 기억이 비교적 선하다. 축구 전반전이 끝날 시간(45분) 안에 논어 20편을 암송했다는, 과거 선생님들의 무용담이 판타지처럼 느껴지던 때였다. 귀중한 경험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논어의 형성사에 대해 자세히 공부하지 못한 것은 개인적인 아쉬움으로 남았다. 물론 해당 프로그램이 해석과 암기에 집중하는 만큼, 문헌학적인 부분은 필자가 혼자서라도 보충해야 했다고 느꼈었는데, 후회가 쌓일 만큼 쌓이던 찰나, 빈동철 선생님의 『논어(論語)』 형성 배경 강연을 듣게 되었다.

강연을 듣고, 논어와 선진(先秦) 학술사에 대한 갈증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었다. 강연자께서는 미국 인디애나대학 (블루밍턴) 동아시아언어와문화과에서 박사학위를 하셨는데, 강연자의 지도교수이신 Robert Eno 역시 전통적인 방식으로 한문을 외워 가며 공부했다고 한다. 서양 학계가 한문 문헌에 약할 것이라는 선입견은 Eno와 고대문명연구소의 해외 자문을 맡고 계신, 시카고대학 쇼네시의 학문적 이력만 개괄해도 쉽게 반박될 수 있을 것이다. (쇼네시 선생님은 『주역(周易)』을 중심으로 전래·출토 문헌 양 방면에 모두 정통한 미국 학자이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일반적으로 논어는 공자의 가르침을 담은, 고대 중국의 유가 사상을 재구성하기 위한 중요 자료로 여겨진다. 그러나 최근 고고학적 성과와 더불어 논어라는 텍스트가 공자 본인의 삶과 시대를 반영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 대두했다. 이는 논어가 서한(西漢) 시기 어느 시점에 편집되었다는 견해로까지 나아가면서 고대 중국 연구를 뒤흔들 잠재력을 가진 주장이 되었다. 그러나 비교적 후대에 편집되었다는 주장이 한 대(漢代, BC 206-AD 220) 이전 논어의 콘텐츠를 구성하는 원천 자료 생성의 부재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조금 더 쉽게 말하자면, 논어가 한 대에 정리되었다고 해서, 논어가 대뜸 그 시기에 떨어진 텍스트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보다 논어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가 시대를 거쳐 형성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논의는 그 자체로 논어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을 뿌리부터 뒤흔들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 한 대 이래 전통적인 논어에 대한 관점은, 그 텍스트가 공자를 잘 아는 사람들(즉, 제자들)이 편집하였기 때문에 공자에 관한 믿을 만한 자료라는 것이다. 논어를 소위 ‘공자님 말씀’이라고 보는 권위는 여기서 생성되었다. 그러나 현재 자료로는 논어가 공자 제자들에 의해 편집되었다는 정보가 무엇을 근거로 형성되었는지, 어떻게 그런 편집의 정보가 한 대에 전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이미 논어의 경전적 지위에 대한 의심의 계보는 한 대의 왕충(王充)으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왕충은 논어 텍스트의 분량이 두 차례에 걸쳐 줄어들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이토 진사이(伊藤仁齋, 1627-1705)의 주장, 즉 논어의 전반부가 그 자체로 완결된 체계이며, 이와 대조되는 이질적인 성격(논어 앞부분에서 보이지 않는 장문의 진술이나 三, 六, 九라는 숫자와 연관된 덕목이 강조됨)의 후반부 10편은 그것을 보충한 것이라는 주장으로 나아갔다. 그로부터 대략 1세기 후 청대의 최술(崔述, 1740-1816)은 논어를 편·장 단위로 분석해, 그것이 후세의 유자(儒子)들이 모여 책으로 완성한 것이며, 공자의 문인과 제자들이 기록한 것이 아니라고까지 주장했다. 한편, 20세기의 키무라 에이이치(木村英一, 1906-1981)는 논어가 일관성이 없다고 주장하기보다, 오히려 논어의 상당 부분이 다양한 편찬 방침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초나라 지역 전국시대(BC 403-221) 출토 죽간의 발견은, 한대의 논어 형성에 공헌했을 춘추전국시대의 원천 자료들이 상호 교차적으로 인용되어 있었음을 증언한다. 즉 이 자료들이 논어의 내용과 일부 유사한 세부 절이나 단락을 서로 다른 버전으로 다양하게 전달하고 있는 한편, 논어와 총체적으로 유사한 내용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은, 현존하는 문헌과 고고학 증거에서 한 대 이전 편집된 논어의 존재를 추론할 수 없음을 알려 준다. 공자 시대 이후, 사마천의 시대까지 존재했던 400여 년의 공백은 논어라는 텍스트가 형성되는 기간이었으며, 그것은 전통적인 관점대로 비교적 단일한 제자(弟子)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여러 시대에 의해 생성된 조각들의 모음이었다.

강연을 듣고 논어가 중국 사상사에서 갖는 권위를 이제는 해체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냐는 의문도 제기될 수 있다. 강연자의 입장은 이와 대조된다. 편집만 한 대에 되었을 뿐, 논어의 원천 텍스트들은 400년의 세월 속, 춘추전국 지성사의 다양한 흐름을 거쳐 형성되어 유통되었다는 것이다. 필자 역시도 그 견해에 동의한다. 논어를 공자님과 그 제자들의 말씀이 그대로 담긴, 소위 mp3 파일 같은 것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용량이 크고 역사가 깊은, ‘전통의 물줄기’ 속에서 형성된 word(s)로 보는 것이, 선진(先秦) 사상사를 더욱 다채롭게 인식하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강연이 좋았다는 것은, 역으로 말하면 논어를 포함한 전래문헌들을 선진 학술사 재구성에 사료로 사용하려던 필자에게 고민을 더욱 가중시켰다는 걸 의미한다. 가면 갈수록 읽어야 할 것, 공부해야 할 것이 더욱 많아진다고 느끼니, 중국 고대사가 실로 광오(廣奧)함을 느낀다. 무더위 속 지적 갈증을 상당 부분 해소해주었지만, 이제 들이켜야 할 것이 더 많음을 깨달았다.


이정우 (저자 소개)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중국 고대사를 공부 중입니다. 주역(周易), 계년(系年), 사기(史記) 등 고대문명연구소의 중국 문명 강연 후기들을 여러 차례 작성했습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김광림  
데이터로 고대사를 읽고자 합니다. 숨겨진 역사의 패턴을 찾아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