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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영상 ❬죽간(竹簡)으로 보는 고대 중국의 점술과 사상❭

김광림 김광림 Apr 24, 2022
강연영상 ❬죽간(竹簡)으로 보는 고대 중국의 점술과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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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정기포럼은 『주역』전문가이자 출토문헌 연구자인 원용준(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님께서 강연을 맡아 주셨습니다. 원용준 선생님은 출토문헌을 중심으로 주역 등의 유교경전을 통한 중국 고대 사상사에 관심을 기울이고 계신데요. 강연에서 죽간에 대한 기본 지식부터 시작하여 출토문헌으로서 『주역』의 현황과 연구의 쟁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번 강연 후기는 중국 고대사와 문헌학을 공부하는 이정우 선생님이 기고를 해 주셨습니다. 젊은 세대 연구자는 이러한 연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글입니다. 강연 영상과 함께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강연 후기: ❬노력하면 길해지리: 출토 문헌을 통해 본 『주역』의 새로운 세계❭

단국대 사학과 동양사전공 이정우

일전에 한문을 한창 공부할 때 경주에서 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겨울, 필자는 논어 공부를 마치고 사학과 동기 둘과 함께 여행을 갔었다. 그때 김유신묘를 갔는데, 묘비 뒷면에 써진 한자를 해독해 보겠다고 발버둥을 쳤었다. 그러자 한 젊은 학부형께서 어린 아들과 함께 오셔서는 ‘이 비문을 해석해 볼 수 있느냐’라고 물어보셨다. 나와 동기는 신이 나서 비문 해석을 말씀드렸다. 사실 원문의 3분의 1도 해석하지 못한 듯해 조금 민망한 상황이었는데, 그분은 요즘 같은 시대에 어려운 공부를 한다며, 밥을 사주겠다고 지갑에서 즉각 신사임당을 꺼내 주셨다. 지금도 그 일은 경주 여행에서 최고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김유신 묘갈명보다도 더 오래되고, 어렵고, 인기도 없는 사료들을 해독하는 학문이 존재한다. 중국 출토 문헌 연구가 그것이다. 이 강연은 최근 중국에서 출토된 고대 죽간 문헌을 바탕으로 주역을 새롭게 해석한 강연이다. 강연자는 주역(周易)을 전공하신 원용준 선생님으로, 성균관대에서 학·석사를, 일본 동경대학에서 박사를 하셨다.

본격적으로 강연 후기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글의 구성이 다음과 같음을 알린다.

  • 1) 근래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한 주역(周易) 점괘의 새로운 해석이다. 우리의 통념과 달리 주역은 인간의 노력을 통한 역경(逆境) 극복을 강조하는, 인간 중심적 텍스트라는 것이다.
  • 2) 중국 산동 곡부(曲阜)의 공자 사당에 남아 있는 공벽(孔壁)에 관한 비밀이다.
  • 3) 공자 관련 일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공자께서 만년에 주역을 읽다가 책을 묶은 가죽끈이 세 번 끊어지셨다(韋編三絶)’ 일화와 ‘오십이 되어 주역을 공부하셨다(五十而學易)’를 비판적으로 해석하였다.
  • 4) 조금 씁쓸한 이야기지만, 한국 학계에서 중국 출토문헌 연구 후학이 양성되지 못하는 현실을 인문학 전반의 상황과 결부지어 이야기하고, 여기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덧붙였다.

아마도 1), 2), 3), 4)에 모두 관심 있는 독자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스크롤을 빠르게 내려 관심이 가는 이야기 위주로 읽으시길 바란다. 물론 긴 글을 다 읽어 주시면 필자로서는 큰 영광이다.

1) 새로운 주역 해석: 그리스의 델포이 신탁과 다른, 인간 중심적 텍스트

강연의 핵심을 이야기하자면, 주역은 우리가 생각하는 점서(占書)와 달리 인간 중심적 텍스트라는 것이다. 근래 출토된 상해박물관(上海博物館) 초간(楚簡)의 주역에서는 ‘중길종흉(中吉終凶)’이라는 점괘가 나온다. 기존에는 전래 문헌(사서삼경 등의 전래된 중국 고전 텍스트)에 따라 중은 중용, 종은 끝까지로 해석하였지만, 이것은 유교가 확립된 후에 만들어진 해석으로 보는 것이 맞다. 당시 전국시대의 맥락에서는 ‘중간은 길하지만, 끝은 흉하다’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 이에 대한 자세한 논증은 강연 영상에 나온다.

중길종흉은, 중간에 길하다고 해도 끝은 흉한 나쁜 점괘이지만, 점괘를 받은 자가 노력하면 개선할 수 있다. 점괘 뒤에 리견대인(利見大人; 대인을 만나는 게 이롭다), 불리섭대천(不利涉大川; 큰 강을 건너는 것이 이롭지 않다)이 나오기 때문이다. 대인을 만나는 게 이롭다는 것은, 적절한 조언을 해주는 중요 인물을 만나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큰 강을 건넌다는 것은 전쟁을 나가는 것과 같은 큰일을 상징하는 말이다. 즉 큰일을 벌이지 말고 잠깐 쉬고 지켜보아야 한다. 요컨대 지금 상황이 좋지 않으니까 잠시 멈추고, 대인을 만나며, 사태의 추이를 지켜본다면, 어떤 식으로든 결과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결말이 바뀐다,’ 서양의 델포이 신탁과 주역이 구분되는 지점이다. 그리스 신탁 관련 이야기는 신이 지시한 운명을 인간이 제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거역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유명한 오이디푸스는 델포이 신전에서 친부를 살해하고 친모와 결혼할 것이란 신탁을 받는다. 그는 운명을 피하려고 집을 떠나는데 결국 길바닥에서 친아버지를 죽이고 친어머니와 결혼하게 된다. 리디아 왕 크로이소스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앞두고 신탁을 들었더니 ‘큰 나라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 말을 들은 크로이소스는 큰 나라를 페르시아라고 생각하고 전쟁을 벌였더니, 오히려 자신의 나라가 망하게 된다. 큰 나라는 페르시아가 아니라 리디아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서양의 델포이 신탁은 거스를 수 없지만, 동양의 주역은 나쁜 운명이라도 인간의 의지에 따라 노력하면 길하게 바꿀 수 있는 희망을 제시한다. 즉 화흉위길(化凶爲吉), 흉(凶)을 변화시켜 길(吉)로 만든다는 것이다. 인간의 노력에 따라 행동의 결과가 바뀐다는 주역의 내용은 수신(修身)에 전념하던 유학자들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이후 유학자들은 주역의 내용을 토대로 군주의 행동을 시정하면 군주 역시 좋은 길로 나아갈 것이라 간언하였고, 그들에 의해 주역은 한(漢) 대 경전의 반열에 오른다. 이것이 원 선생님께서 보는 출토 문헌을 통한 주역 해석의 새로운 길이었다.

2) 산둥성 곡부, 공자 옛집 벽의 비밀

강의 중 죽간 발견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신 것이 흥미로웠다. 특히 중국 고대 문헌에 조예가 깊은 분이라면 공벽서(孔壁書) 일화는 알고 있을 것이다.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의하면, 한 무제 말기 고문상서가 공자 구택(舊宅)의 벽에서 나왔다. 이는 노 공왕(魯 恭王)이라는 사람이 자기 궁궐을 넓히려고 하다가, 벽 속에서 <고문상서(古文尙書)>, <예기(禮記)>, <논어> 등 수십 편을 발견하여 얻은 것인데, 진한대 전서나 예서 이전의 전국시대 고문자로 쓰여 있었다. 당연히 한 대 사람들은 이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러한 문자적 차이는 진시황의 협서율(挾書律)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분서갱유도 당시 지식인들에게 큰 타격을 입혔지만, 실제로 지식 탄압에 보다 큰 영향을 끼친 건 협서율이다. 일반인의 책 소유를 막았고, 그들이 책을 압수하고 가지고 있었다간 엄하게 벌했다. 따라서 진대 사람들이 자신의 장서들을 벽 속에 숨긴 후 흙을 발라 놓았다. 한 이후 협서율이 해제되면서 숨겨진 책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이때 당시 공왕이 궁궐을 넓히려고 하다가 벽에서 신비로운 음악 소리가 들려, 성인의 집이니 공사를 중단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는데, 이는 강연자에 의하면 후대에 각색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공자의 집이 한 무제 시기에 이르러 신성시되었다는 증거이자 후세에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것이다. 즉 공벽서와 관련된 일련의 이야기는 성인의 격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한 픽션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현존하는 공벽에 관한 이야기이다. 중국 산동성 곡부에 가면 지금도 공자의 사당, 즉 공묘가 있고, 거기에 벽을 하나 만들어 놓은 뒤, 공자의 옛 집 벽이라고 표시해 두었다. 그런데 원용준 선생님 왈, 벽이 콘크리트 벽이다. 물론 실제 공자의 옛 집 벽이 아닐 가능성이 있더라도, 옛 고사를 찾아서 이와 같은 기념물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만으로 좋게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3) 공자 관련 일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

이외에 공자와 관련된 일화도 새롭게 해석할 여지를 제시하여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공자의 ‘위편삼절(韋編三絶)’ 고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韋編三絶(위편삼절), 위는 무두질한 가죽, 즉 가공한 부드러운 가죽을 의미한다. 공자가 만년에 주역을 너무 좋아해서, 주역을 너무 많이 읽다 보니까 책을 묶던 부드러운 가죽끈이 끊어졌다는 고사이다. 그러나 원 선생님에 따르면, 가죽끈으로 죽간을 묶는 것은 불가능하다. 위편삼절의 위는 횡선(橫線), 즉 죽간을 묶은 가로 선이 끊어졌다고 보는 것이 최근의 통설이다. 결국 공자가 만년에 주역을 너무 좋아해서 책이 끊어졌다는 것도 후대에 만들어진 픽션일 가능성이 크다.

다른 한 가지 일화는 강의 종료 후 토론 세션에서 나왔는데, 논어에 나오는 오십이학역(五十而學易)에 관한 질문이었다. 원 선생님은 최근의 한나라 출토 문헌 연구 성과를 토대로 역(易)을 역(亦), 즉 또한 역으로 읽을 걸 제안하셨다. 구두점도 다르게 끊어서, 출토 문헌의 원문은 오십이학(五十而學, 亦無太過), 즉 오십이 되어서도 공부를 하면 또한 큰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참고로 육조(六朝) 말기 육덕명(陸德明)의 <경전석문(經典釋文)>에도 易이 亦으로 된 텍스트가 있다. 따라서 ‘오십이학역’의 역을 주역의 역이 아닌 또한 역으로 보아야 한다.

4) 흥미로운 출토 문헌의 세계, 그러나 비정한 현실

이처럼 중국 출토 문헌의 등장으로 주역을 포함한 전래 문헌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고, 공부 역시 재밌어지고 다양해졌다. 기존에 공자가 쓴 것으로 절대시하던 한국 학계의 주역에 대한 이해도 개방적으로 바뀌고 있다. 한국은 20세기 이래 중국에서 발굴된 출토 문헌의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한 전래 문헌 연구가 소략한 편이었는데, 그러한 관점에서 원용준 선생님은 기존의 인식을 혁신하는 매우 귀한 선생님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한국이나 일본, 미국의 유수 대학에도 출토 문헌 자료를 다루는 후학들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출토 문헌 연구에 강점을 보이는 성균관대조차도 출토 문헌을 의식하는 학생들과 기성학자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에 반해 전문적인 트레이닝이나 독해를 하는 인력은 매우 부족하여 전공자들이 새로이 형성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주요 대학이 그렇다면, 지방 사립대학의 경우는 애당초 인문학 공부를 포기하고 가벼운 교양과 직업교육 중심의 흐름으로 나아가고 있다. 즉 인문학 공부 권유 자체가 무리한 요구로서 금기시된다는 것이다. 외국으로 유학가는 학생에 대해서도 한국으로 돌아올 여지를 안 남긴다고 한다. 또한 종교적인 내용과 무관하므로 종교 재단의 후원을 받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대학에서 교직 이수를 했었던 필자가 보기에 후학이 양성되지 못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미 중등 교육 때부터 출토 문헌은커녕 중국학 전반에 대한 관심사가 형성되기 어렵다. 학교 현장에서는 한국사만 필수로 가르친다. 중국사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세계사는, 극소수가 선택하는 과목으로서 기피 대상이다. 즉 역사를 달달 외우는 소위 ‘역덕후’들의 선택과목, 수능 등급 따기 어려운 극한의 과목이다. 비슷한 선택과목인 동아시아사는 아예 폐지될 운명이다. 그나마 공자님, 맹자님의 이름이라도 들어볼 수 있는 윤리와 사상 역시 선택과목이고 출중한 선생님이 안 계시면 학생들은 그저 이해보단 암기에 치중할 뿐이다.

대중 매체에 중국 관련 내용이 얼굴을 내밀기 어려운 것도 한몫한다. 중국 만화영화는 정치적인 문제로 인기를 끌지 못한다. 혹자는 ‘MZ세대’는 중국 고전보다 그리스·로마 신화가 더 익숙하다고들 한다. 이는 모 출판사의 만화 그리스·로마 신화가 2000년대에 대히트했기 때문이다. 과거 비교적 공부를 했던 90년대생 고등학생들을 모아 놓고 ‘트로이 전쟁의 영웅이 누구인가’라고 물어보면 아마 절반 이상은 오디세우스나 아킬레스의 이름을 외쳤다. 하지만, 같은 자리에서 ‘공자의 대표적 제자가 누구인가’라고 물어보면 한두 별종을 제외하고 아무도 대답을 못 했다. 아마 90년대 이후 출생자 중에 고우영 삼국지나 초한지, 채지충의 만화 중국 고전 같은 대중적인 중국학 관련 만화책을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재미있는 강연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공부를 같이 할 수 있는 동학들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자각했을 때 조금 외롭고 섭섭한 점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출토 문헌 공부가 재미있을 뿐 아니라, 희소하고 가치 있는 공부라는 것을 되새길 수 있었다. 원 선생님의 강연은 나중에도 기회가 된다면 꼭 참석하고, 주변에도 권유하고 싶다. 이 후기를 올리는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필자에게 선뜻 저녁 식사를 쏘셨던 그 학부형께서도 혹 이 글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지막으로 이번 강연에서 무엇보다도 중길종흉(中吉終凶), 리견대인(利見大人), 불리섭대천(不利涉大川), 화흉위길(化凶爲吉)이라는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모든 일에 있어 적절한 조언자를 만나고, 재능을 과신하여 큰일을 벌이지 않고, 기본에 충실히 한다면, 운명도 새롭게 더 좋은 방향으로 개척할 수 있지 않을까. 전공 지식을 넘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 같다.

이정우(필자 소개): 단국대 대학원에서 중국 고대사와 고전 문헌학을 공부 중입니다. 漢學은 SK 고등교육재단의 심화 연수생으로 선발되어 2년 동안 전통적인 방식으로 四書와 詩經을 공부하였습니다. 현재는 타 기관에서 書經과 周易을 공부 중입니다. 서양의 문헌학적 전통과 동아시아의 근래 출토 문헌 연구 성과를 중국 고전 해석에 결합하는 공부에 관심이 있습니다.

김광림  
데이터로 고대사를 읽고자 합니다. 숨겨진 역사의 패턴을 찾아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