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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영상 ❬금석학(epigraphy)과 고대 로마의 역사서술❭

심재훈 심재훈 Jan 31, 2023
강연영상 ❬금석학(epigraphy)과 고대 로마의 역사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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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문명연구소 1월 정기포럼 영상이 업로드되었습니다. 전북대 사학과 이지은 교수께서 “금석학(epigraphy)과 고대 로마의 역사서술”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하고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금석학이라는 용어는 원래 중국 상주시대(기원전 15세기-3세기)의 청동예기를 통해 고대의 의례를 다루는 “金”과 1-8세기의 비문을 다루는 “石”이 결합된 학문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금속과 돌이라는 다른 소재에도 불구하고 주로 명문 연구라는 공통점을 지녔고요.

중국의 북송시대인 11세기 중엽 황실과 사대부들은 “과거에 대한 관심 폭발”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고대의 기물들을 열정적으로 수집하고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금석학이라는 학문이 태동한 것으로 봅니다. 그 효시로 알려진 구양수(歐陽修, 1007-1072)는 상주시대 청동기에서 오대(五代)의 도교 경전에 이르는 중국 전역의 1천여 점에 달하는 명문 탁본을 소장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여대림(呂大臨, 1044-1091)은 상나라에서 한나라까지 청동기 210점과 옥기 13점의 내력과 내역을 비교적 상세히 정리한 <고고도(考古圖)>(1092년)라는 도록을 내기도 했고요. 중국학자들은 중국 고고학의 기원을 여기서 찾기도 합니다.

흔히 서양적 용어로 호고주의(antiquarianism)라고 번역되는 송대의 이러한 고기물 열풍은 르네상스 인문주의자의 그리스나 로마의 고대 유물에 대한 관심에 비견됩니다. 다만 중국이 명문에 치중한 것과 달리, 서양은 주로 건축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러다가 서양 학자들도 차차 명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1853년부터 로마사가로 잘 알려진 테오도어 몸젠(Christian Matthias Theodor Mommsen, 1817-1903)의 주도로 로마의 명문을 망라해서 정리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지은 교수의 강연은 서양식 금석학의 정의에서 시작합니다. 이어서 로마의 금석학 관습과 함께 몸젠의 주도로 시작되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로마 명문 데이터베이스를 소개합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는 로마의 역사서술에 활용된 대표적 명문인 스키피오 가문의 묘와 아우구스투스의 [업적록]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합니다. 마지막으로 로마제국의 속주 지역에 나타나는 지역화된 금석문을 다루었습니다.

이 강연을 들으며 이전부터 생각해오던 서양과 중국의 뚜렷한 차이점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중국에서는 1899년 갑골문의 발견 이래로 금석학이라는 전통 학문은 점차 사라지고 갑골학을 위시한 고문자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과가 등장합니다. 서양에서는 이 강연에서도 epigraphy를 금석학이라고 번역하듯, 20세기 이후에도 큰 변화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명문 해석상에서 나타나는 차이가 중요한 이유일 것 같습니다. 대체로 그리스나 로마의 알파벳 명문이 해석상 이견이 거의 없는 것과 달리, 표의성과 시대에 따른 변이마저 가미된 중국의 갑골문이나 금문, 죽간문헌 등은 글자 하나하나에 대한 해독에 다양한 견해가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어려운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갑골문이라는 새로운 문자의 발견을 계기로 글자 자체의 분석에 치중하는 고문자학이라는 큰 학문이 태동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중국의 고문자학은 청나라 때까지 성행한 전통 금석학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기도 합니다.

2020년 9월부터 시작한 고대문명연구소 월례 정기포럼의 다양한 강연에서 예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배우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지은 교수의 강연을 즐길 수 있길 바랍니다.

이 글은 심재훈 교수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 (원글 바로가기)

심재훈  
고대 중국을 조금 알고 나니 그에 버금가는 다른 문명의 상황이 궁금해집니다. 새로운 출토자료를 활용하여 중국 고대사를 주로 연구하고, 동아시아 사학사, 기억사, 고대문명 비교 연구에 관심이 있습니다. academia.edu/JaehoonSh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