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고대문명연구소 정기포럼 동영상이 업로드되었습니다. 빈동철 박사는 상주시대의 최고신인 상제(上帝)와 천(天)에 대해서 당대의 갑골문과 금문 자료를 토대로 탄탄한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한대 이래로 정현 같은 학자들의 주석에서 비롯되어 帝와 天을 동일시하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었던 것 같습니다. 빈 박사는 이러한 통설을 반박하며 제와 천이 각각 다른 신이었음을 논증합니다.
우선 『시경(詩經)』과 『상서(尙書)』같은 전래문헌에 제와 천이 확실히 다른 성격을 지닌 것으로 나타나지만, 그 구분이 모호한 측면이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상나라 갑골문을 통해 당시 삼라만상을 주재하는 지고의 신으로서 제의 성격을 분석합니다.
나아가 서주시대 청동기 명문에 나타나는 帝와 天의 용례를 검토하여 각각 다른 신의 지위를 제시합니다. 서주시대에도 초기에는 제가 여전히 최고 지위를 누리지만, 그 역할은 점점 축소되어 인간이 도움을 요청하고 도움을 받는 신으로 나타납니다. 그 대신 천이 상을 멸망시키도록 명을 내린 인격화된 지고의 신으로 제의 역할을 대체합니다. 서주 후기에 천은 인간에게 변덕스럽게 재앙을 내리는 신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결국 상족의 최고신으로서 제와 주족의 최고신으로서 천의 성격을 분명하게 해준 연구로 볼 수 있습니다. 갑골문과 금문을 몰랐던 후한시대의 정현 같은 학자가 전래문헌에만 근거하여 상제와 천을 동일시했고 그것이 정설로 굳어졌지만, 새로운 출토문헌이 과거의 인식을 수정해준 좋은 사례입니다.
전혀 무리한 추론 없이 자료 그 자체에 의존하여 해석을 꾀한 깔끔한 연구였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상나라가 멸망했지만 그 최고신인 제가 서주시대에도 다른 모습으로 여전히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는 모습이 흥미로웠습니다. 강연에 이어지는 토론까지 살펴보시면 더욱 흥미로울 겁니다.
이 글은 심재훈 교수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 (원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