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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소장 중국 청동기에 대하여

심재훈 심재훈 Aug 16, 2020
국내 소장 중국 청동기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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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자 자료를 포함한 고대의 유물을 공부하지만 그것들을 소유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연구의 대상으로 즐길 뿐이다.

2006년에 학생들과 낙양을 여행하다 길거리 상점에서 모조 청동 정(아래 사진)을 한 점 샀다. 할인을 많이 해서 학부 학생들 강의 때 사용하려는 생각으로 구매했다(4-5만원 정도 준 것 같은데 박물관 내의 상점에서는 보통 30만원 이상이다). 낙양에서 실제로 발굴된 기원전 10세기경 서주 초기 방정方鼎과 똑 같이 만든 것이다. 내가 가진 유일한 모조 골동품이다.^^

10년 전쯤 캘리포니아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을 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이메일이 왔다. 뉴욕의 미술품 경매시장(크리스티인지 소더비인지 기억이 가물가물)에서 중국 상나라 때 청동기 몇 점을 구입하려던 차에 감정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뉴욕에 있는 청동기 전문가를 소개해주길 원해서, 그 분야 최고 전문가인 컬럼비아대학의 리펑 교수를 떠올렸다.

일단 어떤 청동기인지 궁금해서 경매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기물들을 살펴보았다. 대부분 상나라 후기 은허시대의 청동 그릇이었다. 명문의 유무나 양식의 희귀성 등이 청동기의 가격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일 텐데, 그 때 그 기물들은 명문이 없는 상당히 흔한 기본 기물이었다. 중국 고대 청동 그릇 중 가장 싼 물건에 속하는 그 경매 시작가가 4-5만불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그 정도의 기본 기물을 구입하려면서 굳이 전문가까지 소개해달라는 부탁이 당혹스러웠다. 좀 쪽팔리기도 했고. 감정이 필요 없는 진품으로 보이기도 해서 그냥 넘어갔다. 그 때 그 청동기를 구입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국립중앙박물관에 중국 상나라 때 청동기가 몇 점 있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대부분이 큰 가치를 부여하기 어려운 기본 기물이다.

그런데 나는 그 몇 점 이외에 국내에 소장 중이라는 중국 청동기 중 진품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그동안 몇 분으로부터 자신이 소장 중인 중국 청동기를 좀 봐달라는 부탁을 받고 찾아가서 보기도 했다. 만약 그런 것들 중 가치 있는 진품이 있다면 국제학계에 소개하는 논문을 쓸 수 있으니 나로서도 가슴 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지금까지 내가 본 것들 중 진품은 없었다. 그 과정에서 재밌는 에피소드가 꽤 있지만 의뢰한 분들의 익명성을 위해서 여기까지만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만약에 그런 기물들 중 명문이 있는 진품이 있다면 그 가격은 따질 수가 없다. 아마 수백억을 호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삼성퇴의 황금가면❭(일빛 2002)이라는 책에서 읽은 듯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생각난다(집에 책이 없어서 기억을 더듬어 쓴다). 1986년 사천성 광한 삼성퇴의 제사갱 두 곳에서 상 후기로 편년되는 인두상을 비롯한 특이한 청동기들이 발견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지금은 그 장소에 삼성퇴박물관을 세워서 그 진귀한 유물을 잘 보존하고 있다. 그 발굴 이후 몇 년 되지 않은 80년대 후반(혹은 90년대 초반?) 일본에서 삼성퇴 청동기 전시를 기획하면서 유명 신문사에서 기자 한 명을 삼성퇴로 파견했다. 당시 중국의 상황이 열악했기 때문에 그 기자가 삼성퇴 유물을 취재하며 상당히 거드름을 피웠던 모양이다. 그 와중에 그가 실수로 옥기 한 점을 깨뜨려버렸다. 그 옥기의 보험가격이 어마어마해서(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백억 이상이었을 것이다) 결국 그 기자는 일본으로 귀국한 후 중압감 때문에 자살했다고 한다. 삼성퇴 출토 청동기의 값어치는 잘 모르긴 해도 그 옥기의 몇 배 이상일 것이다.

사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작년부터 삼성퇴 청동기를 비롯한 사천성의 보물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었는데 코로나 사태 때문에 무산되었다. 사태가 진정되고 내년쯤 그 전시가 성사되어 우리도 중국 청동기의 한 자락을 감상할 기회를 얻게 되길 바란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만약 국내 소장 청동기 중 가치 있는 진품이 있다면 소장자의 허락 하에 국제학계에 소개하는 글을 쓰고 싶다. 물론 실현가능한 일로 보고 있지는 않다.

중국은 위조나 모조품의 천국이다. 기술이 뛰어나서 진위 여부를 다투는 청동기들도 있지만, 지금까지 내가 본 국내 개인 소장가들이 소유한 청동기는 그냥 한 눈에 진품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물론 여기 올린 사진처럼 모조품도 아름답고 신비를 자아내기까지 한다. 고대인들의 상상력을 뛰어넘은 것들도 많다. 그 자체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심재훈  
고대 중국을 조금 알고 나니 그에 버금가는 다른 문명의 상황이 궁금해집니다. 새로운 출토자료를 활용하여 중국 고대사를 주로 연구하고, 동아시아 사학사, 기억사, 고대문명 비교 연구에 관심이 있습니다. academia.edu/JaehoonSh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