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중국 혐오가 고조에 달한 느낌이다. 그 중심에 20대가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인구만으로 한국의 25배 이상인 중국 사람들의 정서를 일반화하기 어렵지만, 최소한 인터넷에 익숙한 대도시의 중국 청년들도 한국과 비슷한 강도의 혐한 대열에 들어서지 않았나 싶다.
양극단이 대세인 시기에 좀 더 이성적일 수 있는 중간자가 설 자리는 항상 비좁다. 중국 문명의 핵심을 관통하는 이 좋은 책이 하필 이런 시점에 출간되어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때론 각박한 현실이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주기도 한다.
이 책은 20세기 초반 이래 중국의 가장 중요한 10대 고고학 발굴을 그 현장의 책임자들이 생생하게 서술한 드문 학술서이자 대중서이다. 중국 고대문명을 오랫동안 공부해온 감수자가 언젠가 써보고 싶은 딱 그런 책이다. 필진마저 드림팀으로 구성된 이 책으로 인해 이제 감수자의 꿈을 접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화수분처럼 다양한 새로운 자료를 쏟아내고 있는 중국 고고학은 전문가조차 그 추세를 따라가기 힘든 상황이다. 그 정수를 엄선한 이 책은 현재 중국의 일부 고고학자들이 자신들 고대문명의 시작을 기원전 3,000년 이전으로 소급시키는 근거인 저장성 항저우 인근의 량주문화에서 시작한다(제1강). 상당 규모의 성터나 화려한 옥기 등을 공부하며 신석기 후기 중국 남방 문화의 발전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어지는 얼리터우는 중국 학계에서 이론의 소지가 없는 최초의 고대 국가 유적이다(제2강). 그 도시의 면모가 확인되는 상세한 발굴 과정과 함께 중국 최초의 청동기와 용 문양까지 살펴볼 수 있다. 저자의 주장처럼 얼리터우를 최초의 중국으로 볼 수 있다면, 이어지는 은허는 거의 100년째 발굴을 지속하는 중국 고고학의 요람이다(제3강). 갑골문과 함께 최고조에 달한 청동 제작 기술의 발전, 도굴을 피한 상 후기의 왕비인 부호 묘에 대한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중원의 중심 은허에서 상 문명이 발전하던 그 시점에, 은허 서남쪽으로 1,500킬로미터 떨어진 쓰촨성에서도 화려한 청동 문명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1980년대 중반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싼싱두이 문명이다(제4강). 1930년대 이래 그 발견 과정과 청동 가면 등 신비로운 유물, 그 문명의 내력과 교류 상황까지 전해준다. 이러한 세기적 발견은 더 멀리 서북 변경 신장 지역에서도 있었다. 20세기 초 서양의 고고학자들이 최초로 보고한 사막의 샤오허 묘지는 2,000년대 초반 중국 고고학자들 발굴로 그 모습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었다(제5강). 극한 상황에서 그들의 분투와 함께 약 4,000여 년 전의 생생한 묘지와 미라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다시 중원으로 돌아오니 단일 무덤으로는 세계 최대인 진시황릉이 기다리고 있다(제6강). 지난 40년 동안의 거대한 발굴은 진의 문명과 과학 기술, 음악을 비롯한 예술 등과 함께 진시황에 대해서도 새로운 인식의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대형 무덤은 한나라 때도 조성되었다. 2011년 남쪽 장시성에서 발견된 해혼후 묘는 한때 황제의 자리까지 올랐다 열후로 강등된 비운의 인물 유하의 무덤이다(제7강). 1만 점이 넘는 유물 중 다양한 금기와 어마어마한 분량의 오수전, 공자와 제자들 모습을 담은 거울, ❬논어❭를 비롯한 다양한 간독 문헌이 두드러진다. 당시 중원의 중심은 중국 고대 수도의 대명사인 장안이었다. 한나라와 당나라 때 장안성의 상세한 면모가 그 뒤를 잇는다(제8강)
마지막 두 장은 다시 변경으로 돌아가지만, 그 의미는 어떤 유적 못지않다. 그 첫 번째가 광동성 광저우 인근에서 수중 고고학의 성과로 들어 올린 송나라 때의 원양무역선 난하이 1호이다(제9강). 꼬박 30년이 걸렸다는 이 발굴은 감수자에게 이 책의 백미로 다가왔다. 목포의 해양유물전시관 보존된 신안 해저 무역선과 비교하며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동남단 광저우 바닷가에서 무려 3,500킬로미터 떨어진 서북 변경 둔황의 막고굴이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여 의미심장하다(10강). 세계 예술의 보고라는 막고굴의 내력 및 구조와 함께 그 다양한 회화와 사본까지 상세히 전해준다.
수준 있는 교양을 갈구하는 독서인에게 예상치 못했던 흥미로운 지식을, 중국 고대문명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학도들에게도 체계적 인식을 도와주는 알찬 책이다. 감수자의 이름을 걸고 기꺼이 권하고 싶다.
감수자는 매년 사학과 입학생들을 대상으로 “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라는 수업을 담당하고 있다. 수강생 대부분이 중국과 일본사 위주의 그 수업을 듣고 그동안 깊이 각인된 한국 중심 역사 인식의 한계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편협한 역사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어 고맙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누구를 싫어하는 감정은 대체로 상호적이다. 어느 일방을 원인 제공자로 탓하기는 어렵다. 혹자는 중국은 변하지 않는데 왜 우리만 변해야 하냐고 강변할 것이다. 중국과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싶으면 계속 그렇게 하라고 감수자 역시 강변하고 싶다.
책 한 권이 인식 상의 변화를 초래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전근대 문명의 중요한 토대가 바로 이 책에서 다루는 중국 고대문명에서 나왔음을 기억해야 한다. 고대 중국 연구를 세계 인문학의 가장 역동적인 연구 분과로 인식하는 서양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이 책의 여러 고고학 유적을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 여기며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이 책에도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 학자들이 자신들의 고고 유적을 다루기 때문에 일부 우리식 “국뽕” 모습이 두드러지는 양상은 어쩔 수 없다. 그러한 견해가 중국 학계에서 온전히 수용되는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나아가 그런 대목이 오히려 “우리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하는 역지사지의 기회가 될 수 있길 바란다.
서론을 쓴 리링을 비롯한 이 책의 필진은 모두 중국의 최고 학자들이다.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각 필자 나름의 다양한 문체 때문에라도 번역이 아주 힘든 책이다. 이 책의 또 다른 백미인 화려한 도판 역시 편집의 어려움을 더해주었을 것이다. 이 책을 펴내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인 도서출판 역사산책의 편집진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