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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영상 ❬이스라엘·팔레스틴 고고학사: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논쟁들❭

김아리 김아리 Oct 10, 2023
강연영상 ❬이스라엘·팔레스틴 고고학사: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논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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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강후구 박사님의 강연은 학자들뿐만이 아니라 신학도와 일반 대중 모두에게 흥미가 있을 주제였습니다. 유대교,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의 공동의 성지로서 이스라엘의 중요성은 이미 모든 이들이 잘 알고 있을 듯합니다. 강후구 선생님은 이번 강연에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틴 지역의 유물들이 언제부터 어떠한 방식으로 발굴되었는지, 그리고 그 결과 어떠한 다양한 논쟁이 발생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선생님은 총 7 시기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틴의 고고학사를 분류하여 다루셨습니다. 선생님의 강연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1890년대 이전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틴 고고학의 태동기로 성지 탐사와 성서 지명 확인을 하는 기초적인 작업들이 이 시기에 이루어졌습니다. 그 이후 성장기로 볼 수 있는 1890년부터 1920년대에는 당시 세계적으로 제국주의가 팽배하던 시대 배경을 무대로 유럽인이 주축이 되어 이 지역에서 성서의 지명을 중심으로 대규모 발굴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이후 발전기에 접어든 이스라엘과 팔레스틴 고고학(1920-1940)은 학자들이 발굴지의 주도권을 쥐게 된 이후로 학구적인 면모를 가지고 이전과는 다르게 좀 더 체계적으로 변했습니다. 이때의 연구성과로는 므깃도, 라기스 발굴들을 들 수 있습니다.

1948-1970년 사이에는 관심 지역 고고학의 내적 성장기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이때 이스라엘과 팔레스틴의 정치적인 변화가 많이 일어납니다. 이스라엘 국가가 수립되고 민족주의가 발흥하며 이로 인해서 팔레스타인 지역민과 분쟁이 벌어지고 이것이 당시 이 지역의 학술발굴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후 1970년대 말부터 1990년 초까지 이스라엘 고고학의 연구성과를 놓고 최대주의자와 최소주의자 논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 1990년 중반부터 2000년 중반까지는 고고학의 연대를 놓고 핀켈쉬타인의 저연대 주장과 텔 아비브파의 논쟁이 벌어집니다. 가장 최근에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이루어지고 있는 위조품 논쟁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야고보 납골함 사건을 들 수 있는데, 이 사건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 그 여파가 컸습니다.

7단계로 살펴본 이스라엘과 팔레스틴 고고학의 연구사는 상당히 다채롭고 흥미로웠으며, 그 과정이 이 지역 역사의 굴곡과 연관이 있어서 많은 시사점을 주는 훌륭한 강연이었습니다. 더욱이 강연 이후 이루어진 다양한 질의응답은 이 주제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되었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유튜브 영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김아리
고대근동의 법제사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상속법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법제사와 고대사에 관심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