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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영상 ❬사치의 탄생: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우르(Ur) 유적❭

김광림 김광림 Oct 29, 2021
강연영상 ❬사치의 탄생: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우르(Ur)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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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치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사치스러운 광경을 쉽게 목격하기도 하며 때로는 사치를 직접 누리기도 합니다. 물론 그것이 나만의 기준에 해당하는 상대적 사치라 해도 말이죠. 이러한 사치는 과연 무엇이고, 언제부터 시작된 인간 고유의 행동일까요?

고대문명연구소 10월 정기포럼에서 이 빅퀘스천을 정면으로 다뤘습니다. 두 시간 반 동안, ❬사치의 탄생: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우르(Ur) 유적❭이란 주제로 4500여 년 전, 지금 기준으로도 충분히 사치를 누렸던 사람들과 그 사회를 면밀히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선사시대 고고학 전문가인 박성진 선생님께서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도시국가 우르의 유적지를 소개하고, 문명화된 인류가 처음으로(?) 가장 사치했던 시기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설명해 주셨습니다.

고대 세계로 들어가기 전 먼저 합의를 보아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기준과 정의를 갖고 있는 ‘사치’에 대한 함의가 바로 그것입니다. 강연은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사치란 ‘화려하고 값진 것’ 또는 생존에 필요치는 않지만, 즐거움을 주는 어떤 것으로, 사치의 기본 요소인 ‘값진 것’은 물건 자체의 내재적 속성이 아니라 사회가 물건에 부여하는 문화적 의미에 따라 결정되는 속성을 지닙니다. 물건의 가치와 사치의 의미는 결국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달라집니다. 인간 사회 형태와는 상관없이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이후 사치는 계속 있어왔는데요. 평등사회에서는 통합 목적으로 호혜적 사치가, 서열사회에서는 분리 목적으로 과시적 사치가 있어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어 사치를 앞장서 누리는 자와 이를 쫓는 자 간의 사회적 모방 경쟁이 끊임없이 이어지는데요. 일상재와 사치재의 전환과 그 과정에서 혁신과 정체를 연이어 일으키는 사례로, 인도 당와라(Dangwara) 마을의 토기 형태 변화과정은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이어 강연의 무대는 인류 최초의 본격적인 사치 현장으로 옮겨집니다. 메소포타미아의 초기 국가단계가 나타난 고대 도시 ‘우르Ur’에서 1920년대에 ‘우르 능역(The Royal Cemetery of Ur)’으로 불리는 무덤군이 발굴됩니다. 무려 2110기의 단독 무덤과 16기의 ‘왕릉’이 발견되었는데, 부장품과 형태로 볼 때 다양한 사회 계층이 함께 살았던 증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중 왕릉급 무덤 6기에서 적게는 5구, 많게는 70구가 넘는 순장자가 발견되었는데요, 순장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매우 드문 현상으로, 이 시기를 제외한 전후 시대 모두 이 정도의 순장 사례는 찾기 어렵다고 합니다. 순장을 매우 비싼 사치의 표현으로 본다면, 우르를 포함한 세계 각지의 초기국가시대에 순장이 다양하게 나타났던 것은 당시 시도할 수 있는 최고의 사치를 각지의 권력자들이 공통적으로 누렸다 볼 수 있겠습니다.

사치재는 점차 화려해지고, 그 부속품도 복잡하고 많아지는 특징을 보입니다. 특정 제품이 대중적이 되면, 숙련도 높은 장인의 기술을 이용해 소량 생산 및 소비, 그리고 개성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나는데요. 이는 4500년이 지난 오늘날 소위 ‘명품’ 소비에도 완벽히 일치하는 현상입니다. 이러한 사치를 위한 광역 교역망이 구축되어 이집트, 아나톨리아, 이란, 오만, 인더스, 중앙아시아 등의 방대한 지역을 연결하였는데요. 각 지역이 생산지, 중개지, 소비지로 나뉘고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고대 세계체제가 완성되어 오랜 기간 유지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사치의 현장은 우르의 연회에서도 목격됩니다. 연회는 함께 음식을 먹는 자들 사이에 사회적 관계형성, 유대감 강화를 목적으로 하나, 다른 집단을 배제하는 수단으로도 기능합니다. 이는 지배집단과 낮은 지위의 집단 사이의 음식과 조리법을 다르게 하여 차별화하거나, 다른 미각과 식사예절로 그 분리를 공고히 하는 경향으로 나타납니다. 아래 나오는 ‘우르의 깃발’ 유물에서 우리는 고대 문명의 연회가 어떻게 그런 분리를 제도화하고 강화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강연의 마지막 단원은 ‘사치의 진화’로, 카리스마적 지배체제와 사치, 그리고 종교와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짚어가게 됩니다. 엘리트가 종교를 통해 영원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왜 왕은 ‘사회적 정의’를 강조하고 ‘법을 주는 자’가 되었을까요? 이러한 사회 형태의 변화와 상징체계 축의 이동은 사치와 어떻게 맞물려 변화하게 되었을까요? 결말은 아래 강연 영상에서 직접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강연 이후에도 한 시간 가량 토론이 이어지는데요, 수준 높은 질문과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주제들이 이어집니다. 그럼 흥미로운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치의 현장’으로 떠나 보시죠!

김광림  
데이터로 고대사를 읽고자 합니다. 숨겨진 역사의 패턴을 찾아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