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um,

강연영상 ❬인도 선사미술 에세이❭

박성진 박성진 Feb 07, 2022
강연영상 ❬인도 선사미술 에세이❭
Share this

❬인도 선사 미술 에세이❭ 강연 후기

우리의 직접적인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 전역으로 확산하는 시기인 후기 구석기시대에 상징 행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 학계에서는 현생인류와 다른 고인류를 구별 짓는 하나의 기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구석기시대 예술 행위가 나타나는 지역은 남북 아프리카, 유럽, 호주 등으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시아에서는 후기 구석기시대의 예술 행위를 보여주는 확실한 유적이나 유물이 없었다. 지적 능력에서 현생인류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하는데, 왜 유독 아시아에서는 예술 행위를 보여주는 유적이 없는 것일까? 모순도 이만저만한 모순이 아니다.

몇 년 전부터 인도네시아의 술라웨시섬과 보르네오섬 일대에서 후기구석기시대의 동굴벽화가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 물론 이전에도 동아시아에서 구석기시대 예술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보고된 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거에 보고된 동아시아의 구석기시대 예술품들은 진정한 예술 행위로 보기에 어렵거나, 연대에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최근 동남아시아의 동굴벽화 유적들은 이 두 가지 치명적인 약점을 극복하는 아주 귀한 유적들이 연달아 발견되고 있다. 2021년 1월에 Science Advances에 보고된 랑떼동게동굴(Leang Tedongnge cave)의 멧돼지 그림의 연대가 무려 4만 5천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니, 후기 구석기시대 중에서도 매우 이른 시기에 속하는 유적이다.

이처럼 동남아시아에서의 연이은 새로운 발견들로 최근 학계의 통설을 뒤집는 가운데, 고대문명연구소(IREC) 정기포럼에서 ❬인도 선사 미술 에세이❭라는 제목으로 김용준 선생이 1월 29일(토)에 강연회를 했다. 김용준 선생은 인도 현지에서 고고학을 전공하여 석·박사학위를 취득하여 현지 고고학의 실정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강연을 시작하면서 우선 그는 구석기시대의 예술세계 일반에 대해 큰 틀에서 인도 선사 예술을 조망하였다.

김선생에 따르면 예술의 기원은 멀리 전기 구석기시대부터 찾을 수 있고 스페인 아타푸에르카(Atapuerca) 유적의 부장품으로 추정되는 좌우대칭의 주먹도끼를 바로 그러한 예라고 하였다. 그는 또한 남아프리카의 블롬보스 동굴(Blombos Cave)의 7만 3천 년 된 층에서 발견된 해시태그처럼 보이는 기호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이렇게 아프리카와 유럽의 예술품으로 운을 뗀 다음, 강연자는 인도의 자연환경을 독자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으로 본격적인 강연을 시작했다.

대개 인도하면 인더스강 유역과 갠지스강 유역을 먼저 떠올리지만, 사실 이 두 유역은 유수에 의한 삭박작용으로 동굴벽화 보존에 그리 유리한 환경이 아니다. 따라서 동굴벽화 보존에 적합한 환경인 인도 중부지역, 즉 나르마다강 유역과 빈드야 산맥 일대를 중심으로 벽화예술이 집중되어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나아가 시베리아 암각화와 공통점이 많은 인도 북부지역, 즉 히말라야 산악지대와 달리, 인도 중부지역의 벽화예술은 인도의 지역적 특징도 많이 간직하고 있다는 점도 함께 지적하였다. 인도 선사 예술의 지역적 특색을 잘 나타내는 중부지역에서도 특히 빔베트카 바위그늘유적군(Rock Shelters of Bhimbetka)은 벽화예술이 가장 집중된 곳으로서, 이 유적군은 2003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빔베트카 바위 그늘 유적군에서 예술의 흔적은 놀랍게도 후기 구석기시대가 아닌, 지금으로부터 30만 년 전인 전기 구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만약 이 연대가 맞는다면 이 유적군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벽화예술유적이 되는 셈이다. 빔베트카 바위 그늘 유적군에 속한 유적들 중 하나인 오디토리움(Auditorium) 동굴의 벽에는 지름이 2~3cm 정도의 구멍(cupules)이 11점 새겨져 있고 다른 벽화예술유적인 다라키-사탄(Daraki-Chattan) 동굴에서는 이러한 구멍이 무려 498점이나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두 동굴 안 퇴적물의 최상층에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출토되는 것을 보면 이 벽화예술제작 시기는 전기 구석기시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와같 은 주장은 호주의 고고학자 로버트 베드나릭(Robert G. Bednarik)과 현지 고고학자 기리라즈 쿠마르(Giriraj Kumar) 등 일부 연구자들이 90년대 초부터 꾸준히 제기해 왔다. 하지만 강연자도 인정했듯이, 국제학계에서는 그들의 주장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석기의 형식 분류학에 의존한 연대가 불확실한 데다, 딱히 이 유적들에 적용할 수 있는 절대 연대측정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유적의 연대가 타당하냐는 문제는 후기 구석기시대에 제작되었다고 주장되는 빔베트카 유적군의 다른 벽화예술에서도 마찬가지로 제기되고 있다. 유네스코의 공식적인 설명에 따르면 빔베트카의 벽화는 2만5천 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절대 연대측정 방법을 적용한 적은 없다. 서유럽의 바위 그늘 유적이나 동굴 유적의 경우, AMS 연대측정법을 적용해 볼 수 있지만, 인도의 유적들에서는 적용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따라서 벽화에 표현된 도상에서 관찰되는 여러 가지 양식적인 특징들을 가지고 연대를 추정할 수밖에 없는데, 발표자는 후기 구석기시대 속하는 도상은 S자형 구도의 동적이고 근접사냥의 모습이 담겨 있는 반면, 중석기시대 이후에는 도상이 상대적으로 정적이고 잔석기를 이용한 원격사냥의 모습이 담겨 있는 점에서 구별된다고 하였다. 또한, 식량 생산이 시작되는 신석기시대에는 인도 혹소(Zebu) 같은 가축들이 등장한다고 한다.

벽화에 남겨진 도상들은 크게 동물, 인간, 기하학적 표시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유럽에서는 후기 구석기시대에 인간과 기하학적 표시들이 표현되는 경우가 매우 드물고 주로 중석기시대 이후에나 나타나는데, 인도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 특이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인도의 벽화예술에 주로 사용된 색깔이 시기적으로 다르다는 점이다. 강연자에 따르면 후기 또는 중석기시대에는 흰색이 주로 쓰이고 그 이후 시대에는 붉은색이 주로 쓰였다고 한다. 서유럽의 벽화예술에서는 그와 같은 현상을 볼 수 없다. 한편 인도에서는 시대에 따라 선호하는 색깔이 변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게다가 후기 구석기시대 도상들에서 사람의 모습이 많이 표현된다는 점에서 후기 구석기시대 인도의 벽화예술은 유럽보다는 아프리카의 벽화예술과 더 공통점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좀 더 구체적인 비교 분석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인도 선사 예술에 관한 강연을 듣는 내내 많은 의문이 들었다. 예를 들어 아타푸에르카 유적에서 발견된 주먹도끼를 과연 예술 행위로 인식할 수 있을까? 백번 양보해서 설령 그 주먹도끼가 부장품이었다 해도 모든 부장품을 예술품이라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도의 벽화예술에서는 초식동물 못지않게 사냥을 비롯한 인간의 다양한 활동이 묘사되어 있는데, 서유럽에서 이와 같은 이미지들은 중석기 이후에나 등장한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 아프리카에서도 이와 같은 도상들이 출현하는 시기는 늦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자연히 인도 선사 예술의 시기 문제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만약 늦은 시기 예술이 아니라면, 인도만의 지역적 특색이라고 봐야 한다.

세계 어디에서고 선사시대 예술을 연구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연대를 확신할 수 없는 벽화를 연구하는 것은 자칫 사상누각으로 끝날 위험도 크다. 석회암지대의 바위 그늘이나 동굴에 그려진 벽화처럼 비교적 연대가 확실한 벽화예술도 있지만, 대체로 벽화예술, 특히 개방된 공간에 덩그러니 암각화만 남아 있는 유적을 연구한다는 것은 신념에 관한 문제로 둔갑하기에 십상이다. 그래서 이른바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에서 암각화 연구는 아마추어들의 소일거리일 뿐, 학문의 대상이 아니라고 평가절하하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 확실한 연대를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포럼이 끝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중국 윈난성의 진사강(金沙江) 유역의 후탸오샤(虎跳峡)의 한 동굴에서 1만 3천 년에 그려진 벽화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연대측정은 앞서 언급했던 동남아 벽화를 측정했던 방식과 똑같은 고정밀 우라늄계열 연대측정법(High-precision U-series dating)을 적용했다. 20년 전, 박사과정생일 때 나는 우라늄계열 연대측정은 이처럼 연대가 낮은 유적에서는 오차범위가 너무 커서 적용할 수 없다고 배웠다. 그런데 그때 적용할 수 없다고 가르쳤던 교수가 저우커우뎬(周口店)에 처음 적용한 이래, 다른 연구자들이 그와 같은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것을 보면 지금은 가능한가 보다. 아무튼, 중국에서 구석기시대 동굴벽화가 발견되었다니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기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지금 추세대로라면 중국에서 이보다 더 오래되고 확실한 동굴벽화가 더 많이 발견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한편 한반도에서도 연대가 확실한 벽화예술이 발견될 가능성이 아주 없진 않다. 경기도 남양주의 호평동 유적과 전라남도 장흥군 신북 유적에서는 안료로 추정되는 흑연과 철석영이 발견되었고 충청북도 단양군 수양개 하진리에서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눈금이 새겨진 돌이 발견되었다. 모두 예술 행위의 직접적인 증거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예술 행위를 간접적으로 지시하는 유물들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남한에서 연대문제로부터 자유로운 벽화예술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는 지역이 영월, 제천, 단양 일대로 매우 좁다. 반면에 북한의 평안도 일대는 드넓은 석회암지대가 펼쳐져 있고 동굴들도 잘 발달하여, 구석기시대 벽화가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 이래저래 통일되어야 할 이유가 많다.

박성진
선사시대 석기제작기술체계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현재 고대 문명 간 자원 교역시스템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