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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영상 ❬북토크: 힌두교사 깊이 읽기, 종교학이 아닌 역사학으로❭

심재훈 심재훈 Aug 31, 2021
강연영상 ❬북토크: 힌두교사 깊이 읽기, 종교학이 아닌 역사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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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사 강연과 학술 생태계

지난 토요일 고대문명연구소에서 주관한 이광수 교수의 힌두교사 강연은 여러 가지를 고민하게 해주는 유익한 강연이었다. 세상의 선악을 비롯한 모든 이치를 다 포용하는 듯한 힌두교라는 종교는 다른 어떤 종교보다 유동성이 심한 종교로 이해되었다. 거기에는 고대 이래 인도라는 나라를 구성해온 다양한 지리적 요인뿐만 아니라 수차에 걸친 외세의 침략 등 여러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 발생 초기 단계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힌두교의 진화 과정을 쉽게 설명한 이 교수의 유튜브 강연을 링크한다.


1시간 정도 진행된 질의응답의 말미에 나는 이제 정년을 3년 앞둔 이 교수의 향후 계획에 대해 여쭈어보았다. 그 답변에서 오늘 얘기하고 싶은 뼈아픈 현실을 되짚어 보게 되었다.

나는 학술 혹은 학문의 본질은 “진리”와 “수월성” 추구에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렇게 얘기하면 공부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수월성”을 “쉽다”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의 수월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빼어나다”는 의미의 수월(秀越)이다. 모든 연구가 그 자체로서 의미를 지닐 수 있겠지만, 최소한 “수월성” 추구에 작은 디딤돌이라도 될 수 없는 연구에서 학술적 가치를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이 교수께서는 정년퇴직과 함께 그동안 당신께서 모아온 모든 책을 학교 운동장에서 불사르고 싶다고 하셨다. 대학 도서관이 포화상태라 책을 기증할 수 없는 현실 못지않게 다른 깊은 회한이 담겨 있는 진심 어린 농담이었다. 인도 델리대학에서 인도 고대사를 공부한 이 교수는 박사학위 취득 후 부산외국어대학 교수로 자리를 잡았으니 어떤 면에서 행운아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가 본질적으로 추구하고자 했을 인도고대사라는 넓고 깊은 학문을 과연 마음껏 공부했을까 라는 의문에 그 농담의 해답이 있을 것 같다. 공부는 당연히 혼자 하는 외로운 싸움이고, 그걸 즐기지 못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연구자로서의 소양이 없다고 본다. 그런데 아무리 혼자 하는 일이라고 해도, 공부의 집합인 학문은 최소한도라도 네트워크 없이는 불가능하다. 전 세계적으로 수월성을 인정받는 학문 중 활발한 네트워킹 없이 나온 건 없을 것이다.

이 교수는 1990년대에 한국 대학의 사학과가 200여개 되었고, 한 학과에 교수가 4명씩만 있다고 해도 총 800명을 되었을 텐데, 당신은 사학과 소속이 아니었으니 실상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다고 하셨다. 고대사로만 치면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이런 계산까지 하게 되었을지 충분히 짐작되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학문을 하는 괴로움은 학자로서의 성실성을 갖춘 그로 하여금 외도를 하게 했던 것 같다. 부산 지역의 노동운동사가나 사진 평론가로서의 훌륭한 역할은 그의 다재다능함 이상으로 한국의 열악한 학문 생태계를 여실히 대변해준다.

나는 중국고대사를 연구하면서 항상 스스로를 소외학문 전공자로 간주해왔다. 그러나 이광수 교수를 비롯하여 여타 지역 고대문명 전공자들과 함께 고대문명연구소를 통해 교류하면서, 한국에서의 고대 중국 연구는 사실 훌륭한 여건을 갖추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학술 생태계를 비롯한 한 사회의 다양한 생태계는 당연히 그 시대적 산물이다. 한국전쟁 이후 구축되기 시작한 한국의 학술 생태계는 이제 청년기쯤 이르렀을 텐데, 인문학의 경우 불가피하게 한국학 위주로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위성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나는 과연 한국학이라는 학문이 얼마나 수월성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분야인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회의적이다. 다양한 학문을 포괄하는 세계적 보편성보다는 지역적 특수성이 중시될 수밖에 없어서, 상대적으로 단순한 그 지역성 추구라는 대세가 학문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착화된 한 사회의 생태계가 거기에 종사하는 한 사람의 짧은 생애에 바뀌기를 기대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불합리하더라도 이미 많은 사람이 그 생태 구조 속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게 어찌 쉽사리 변화하겠는가. 한국 사회의 다른 많은 문제들도 결국 비슷한 상황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그걸 바꾸려고 하면서 때론 극심하게 갑론을박하는 것이고.

그렇다고 최소한 내가 보기에 학문의 수월성 추구에 중요한 디딤돌이 되는 세계 고대문명 연구를 도외시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그 연구의 싹이 이제 한국에서도 조금씩 올라오고 있으니 말이다. 결국 그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학문적 네트워킹에 열심히 노력하며 자신이 추구하는 학문이 최소한 한국 학술계와 지성계에 유용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지난한 일이지만, 선구자라는 자부심이라도 가지면서 말이다.

강연료 한 푼 없이 기꺼이 세 시간을 쏟아준 이광수 교수께서 침체되어 있던 나에게 투지를 불어넣어 주셨다. 감사 인사를 드렸더니 당신께서 오히려 동업자들 앞에서 원 없이 하고 싶은 말씀을 하실 기회를 부여받았으니 더 고맙다고 하신다. 외롭게 분투해 오신 이 교수 덕택에 한국에도 인도 고대사의 일부라도 심도 있게 소개되었으니, 충분히 그 소임을 다 하셨다고 믿는다.

건방진 얘기지만, 한국의 학술 생태계에 대해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고민할 수 있길 바란다.

심재훈  
고대 중국을 조금 알고 나니 그에 버금가는 다른 문명의 상황이 궁금해집니다. 새로운 출토자료를 활용하여 중국 고대사를 주로 연구하고, 동아시아 사학사, 기억사, 고대문명 비교 연구에 관심이 있습니다. academia.edu/JaehoonSh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