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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영상 ❬고대중국 역사기록의 시작과 전개 : 신자료를 중심으로❭

김광림 김광림 Apr 30, 2023
강연영상 ❬고대중국 역사기록의 시작과 전개 : 신자료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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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김석진 선생님의 강연 후기는 중국 고대사와 문헌학을 공부하는 이정우 선생님이 기고를 해 주셨습니다. 강연 영상 시청에 앞서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강연 후기: 고대 역사기록 연구의 새로운 무기(武器)

단국대 사학과 동양사전공 이정우

주변에 인문학이나 한학(漢學) 소양이 풍부한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그분들조차도 중국 고대사와 중국 고대 문헌 공부의 깊이를 체감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많다. 혹자는 고대사가 막연한 상상의 영역이라 생각하기도 하고, 혹자는 새로이 출토되고 있는 중국 문헌들이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필자는 전공자와 비전공자의 경계에 서서 난감함을 느끼곤 하였는데, 오늘 김석진 선생님의 강연을 듣고 나니, 그 난감함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다. 강연에 20세기 이래 지금까지 발견되고 있는, 고대 중국 핵심 사료들의 현황과 내용이 아주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강연자이신 김석진 선생님은 고대문명연구소의 심재훈 선생님께서 배출한 1호 박사이시며 태동고전연구소(지곡서당)에서 3년 동안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암송하셨다. 박사학위논문은 고대 중국 역사류 문헌, 특히 그중에서도 전국시대 죽간 ❬계년(系年)❭을 중점적으로 다룬 600페이지의 노작이다. 실물을 들고 있으면, 둔기(鈍器)에 가까운 무기로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리적으로 무기에 가까운 논문 부피답게, 강연자의 논문과 이에 기반을 둔 강연 내용은 (어느 지역을 연구하든) 고대사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학술적으로도 좋은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역사학·문헌학·문자학·언어학 등의 광범위한 연구 성과를 종합했을 뿐 아니라, 중국 출토 문헌에 대한 강연자의 해박한 지식에 기반을 둔 상세한 번역과 주석(注釋)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강연자는 기원전 1200년경부터 221년 진(秦) 제국의 통일까지, 천 년간 기록되어온 고대 중국의 역사류 문헌을 상(商)나라 갑골문·서주(西周) 청동기 금문(金文)·전국(戰國)시대 죽간 등으로 개괄하고, 그 문헌들의 양상을 상세히 정리하고 소개하였다. 동아시아의 한학(漢學)과 서양 문헌학의 성과가 논문 하나에 집약된 것으로, 본고장인 중국에서조차 잘 시도되지 않았던 강연자만의 영역이라 할 수 있겠다.

고대 중국 역사기록의 시·공간

강연의 첫 내용은 고대 중국 역사류 문헌의 시간과 공간을 브리핑한다. 역사류 문헌이란 본격적인 역사서의 등장 이전, 과거에 관한 기억, 기록 등을 포괄하는 서술이다. 이들 문헌이 시간상으로 다루는 범위는 중국에서 하상주(夏商周) 삼대(三代) 혹은 그보다도 이전의 상고(上古)시대로 알려진 기원전 3000년경부터 서기 220년까지이다. 또 공간적으로는 오늘날의 중국 중원 일대를 포괄하고 있다. 아래 다음과 같은 표를 통해 그 세부를 확인할 수 있다.


고대 중국 역사기록을 이해하는 두 가지 틀: 전래문헌과 출토문헌

(그림 3)의 표는 흔히 이야기하는 ‘중국 고전’, ‘동양 고전’의 범주에 들어가는, 고대 중국의 전래 문헌들이다. 해당 문헌들은 기원전 1000년경인 서주(西周) 시기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시경(詩經)은 문학성을 지닌 서사시와 같은 내용이 전하며, 일부 편들은 역사적인 정보를 담고 있다. 서경(書經)이라고도 불리는 상서(尙書)는 사건을 기록한 글과 인물의 말을 기록한 글들이 혼합되어 들어가 있다. 춘추(春秋) 같은 경우는 연대기의 형식을 취하며, 사건을 간명한 단어나 문장 단위로 기술하였고, 여기에 사건에 대해 좋고 나쁨의 평가 역시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포폄(褒貶)이라고 한다. 전국시대에 이르면 좌전(左傳), 국어(國語), 세본(世本)이라 불리는 5만-10만 자(字) 이상의 방대한 집합적 텍스트가 등장한다. 여기엔 사건의 시작과 끝에 대한 맥락을 보여주는 기사본말(紀事本末)식 서술, 역사적 사건에 대한 직간접적 평가 등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한(漢) 대에 이르러 일반 대중이 흔히 중국 고대사와 동일시하는 사기(史記)가 등장하며, 시공간·인물·사건이 체계적으로 서술된 본격적인 역사서가 등장한다.

강연의 하이라이트는 김석진 선생님의 주요 전공 분야이자 현재 고대 중국 연구에서 가장 뜨거운 분야라 할 수 있는 전국시대 초나라 죽간(楚簡) 역사류 출토 문헌에 대한 개괄이다. 이 문헌들은 근 80년 동안 중국 고고학과 문헌학의 발전에 힘입어 발견·정리되어 왔다. 문서가 애당초 흩어져 있어 정리 및 출간에 많은 노력이 소요되었고, 현재 사용하는 한자의 형태가 아닌 그 이전 단계의 고문자들이라 판독의 어려움이 많아, 사료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훈련을 요구한다. 이들 문헌은 다 합치면 현재까지 사마천 사기(史記)의 절반가량인 20만 자(字)가량이며, 지금도 발굴되고 있고, 최근 발견된 죽간에 이르기까지 163종류에 달한다. 즉 고대사와 중국 사상사를 새롭게 쓸 수 있는 열쇠인 셈이다. 역사 고사(故事), 문학, 병법서, 천문서, 의약서 등이 있으며, 그중 역사류 문헌은 계보나 연대기, 당안(檔案; 尙書와 같이 역사성을 지닌 문서), 내러티브를 가진 고사(故事) 등으로 분류된다. 이 범주에 들어가는 문헌은 70종이다. 해당 문헌들에 대한 자세한 분류와 설명은 강연에서 볼 수 있다.

역사류 문헌과 그 변천을 어떻게 볼 것인가?

마지막으로 강연자는 ‘기록에서 기억으로’ 이어지는 중국 역사류 문헌 서술의 역사를 개괄한다. 중국 역사류 문헌은 상나라 갑골문과 서주시대 금문에서 소위 ‘힘 있는 자들’의 역사로, 왕족과 귀족의 권력 독점 및 유지를 합리화하고 뒷받침하는 실용적 기록들로 시작하였다. 따라서 대개 간략한 글자나 문장 위주의 서술이 많았다. 그러나 이후 능력을 토대로 출세하려는 선비 집단, 학자 집단들로 글의 사용층이 확대되면서, 이들이 군주와 세상의 안목을 사로잡기 위해 쓴, 역사정보에 기반을 둔 서술이 등장하였다. 따라서 길이도 길어지고 내용도 풍성해졌다. 즉 사실성뿐만 아니라 문학성(허구성)을 가진 기록들로 탈바꿈한 것이다.

강연 이후, 포럼에 참석한 연구자들이 연구에 대해 활발한 토론을 전개하였다. 특히 ‘역사류 문헌’이라는 저자의 개념 규정에 대한 토론이 오고 갔고, 다른 고대 문명과 비교하였을 때 중국의 역사류 문헌들을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에 대한 연구자들의 활발한 논의가 전개되었다. 또 진시황의 대대적인 분서(焚書)를 거치고도 역사류 문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한 추정도 제시되었다.

고대 중국 역사류 문헌의 연구가 고대 문명 연구에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번 강연은 고대 중국의 역사류 문헌을 소개하고, 세계 고대 문명의 연구에서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논의하고자 하였다.

최근의 중국 문헌 연구가 세계 문명 연구에 시사하는 바를 논의하기에 앞서, 필자는 한국에서 그 문헌의 연구가, 비록 소수 연구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세계적 수준에 근접함을 강조하고 싶다. 강연자로 오신 김석진 선생님이나 중국 지역을 담당하는 연구소 선생님들의 이력만 봐도 짐작할 수 있듯이, 중국, 일본과 서양의 최신 연구를 수용한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해외 유명 연구자들과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통념과는 달리 본고장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도, 국내용 연구에 불과한 수준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강연자 역시도 훈련받은 바 있는, 한학(漢學)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 문헌 연구의 기반 덕택이다.

즉 다른 지역의 고대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도, 고대 중국 역사류 문헌 연구에 대한 지식이, 현지 및 서양 사람들과 차별화해 쓸 수 있는 또 다른 ‘무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의 고대나 한학(漢學)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 무기의 강력함은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 잘 갈고 닦여진 무기의 예시 중 하나가 김석진 선생님이 (명검을 만드는 장인의 정신을 떠올리게 하는 노력 끝에) 발표한 이번 논문과 강연이 아닐까 한다. 이 강연과 필자가 작성한 후기가 고대 중국 문명 연구의 성과를 다른 문명에 관심 있는 사람들도 활용할 수 있는 데에 기여하면 좋을 것 같다.

이정우(필자 소개): 단국대 대학원에서 중국 고대사와 고전 문헌학을 공부 중입니다. 漢學은 SK 고등교육재단의 심화 연수생으로 선발되어 2년 동안 전통적인 방식으로 四書와 詩經을 공부하였습니다. 현재는 타 기관에서 書經과 周易을 공부 중입니다. 서양의 문헌학적 전통과 동아시아의 근래 출토 문헌 연구 성과를 중국 고전 해석에 결합하는 공부에 관심이 있습니다.

김광림  
데이터로 고대사를 읽고자 합니다. 숨겨진 역사의 패턴을 찾아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