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의 동즈먼東直門역 가까이에 있는 바오리(保利)예술박물관은 화려한 상주시대 청동기를 많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다른 멋진 청동기들에 가려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소형 청동기 한 점이 제 눈을 사로잡습니다.
박물관 도록인 ❬保利藏金(續)❭(嶺南美術出版社, 2001)에는 이 기물을 호수류정虎首流鼎, 즉 “호랑이 머리 모양 주둥이가 있는 정”으로 명명하고 있습니다. 높이 11.6cm, 구경 11.2cm의 정교한 소형 청동 정입니다. 그 용도에 대해서는 장난감 혹은 휴대용 예기, 간장 그릇 등 이견이 있습니다. 산시성山西省 허우마侯馬 일대의 춘추시대 초기(7세기 BC) 유적에서만 드물게 유사한 청동기 몇 점이 발굴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기물도 그 지역의 어느 묘에서 도굴된 것을 바오리박물관에서 사들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전에 썼던 글에서 저는 이 청동기의 뚜껑 중앙에 서 있는 개? 모양 손잡이에 주목했습니다. 이 시기 전까지 중국 청동기에 나타나는 동물은 대부분 사실성이 떨어지는 환상적, 과장적 모습이었습니다. 동물을 자연 형상 그대로 사실적으로 묘사한 청동기는 기원전 7세기쯤 진을 비롯한 북방 지역의 청동기에서 본격적으로 출현하기 시작합니다. 학자들은 이를 북방 초원문화의 영향으로 보고 있고요.
그런데 사실 이 기물 뚜껑의 손잡이 동물에는 더욱 흥미로운 비밀이 담겨있습니다. 양 옆구리에 달려 있는 날개에 대해 저를 비롯한 연구자들이 그동안 큰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이지요.
중국에서 유익신수有翼神獸라고 부르는 날개 달린 상상의 동물은 기원전 5-4세기 전국시대의 여러 유적에서 발견된 바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허베이성河北省 핑산平山의 중산왕묘에서 쌍으로 발견된 기원전 4세기의 유물로, 원래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제국에서 유행한 사자형 그리핀 양식이 알타이 초원 지역을 경유하며 변형되어 중국으로 전래된 것으로 봅니다.
중산왕묘 출토 청동 유익신수
기원전 6세기경 이란 수사Susa 벽돌 부조의 사자 그리핀
기원전 5세기경 알타이 파지리크 쿠르간 2호묘의 청동 장식에 찍힌 사자 그리핀
바오리박물관의 소형 정 뚜껑에 서 있는 동물은 북방 초원이나 서아시아 지역 그리핀의 동물 형상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자신들 가까이 있는 동물에 날개를 단 소박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사실은 뚜껑 위에 서 있는 동물 아래에 장식된 또 다른 동물의 모습입니다. 서 있는 동물의 앞뒤에 대칭으로 호랑이 머리가 드러나도록 동물을 장식했는데 거기에도 뚜렷하게 날개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기물 자체에 북방식 양상이 뚜렷하므로 두 동물에 표현된 날개 역시 유라시아 초원이나 서아시아에서 성행하던 그리핀의 날개를 차용했을 수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 모습이 초원 지역 그리핀과는 다르고, 이 기물의 주조 연대 역시 유라시아 초원에서 대체로 기원전 6세기경까지 소급되는 그리핀보다 더 앞서는 점입니다. 우연적 발견에 의존하는 고고학이라는 학문의 한계를 느끼며 여러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중국에는 이보다 앞선 시기 유적에서도 날개 달린 동물들이 나와서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해줍니다. 그래도 요즘 그리핀의 동진과 동서 문명의 교류라는 주제와 씨름하며 눈이 더욱 밝아지는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