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봉한 교수 강연과 MOU 체결
평생을 한 분야에서 헌신하여 최고의 반열에 올라갔거나 최소한 최고를 향해 매진한 사람의 삶만큼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이번 한 주는 그러한 실제 모델과 함께 하며 감동으로 충만했다. 한국에서 세 차례 순회강연의 마지막을 어제 단국대학에서 멋지게 장식한 북경대학 사학과 주봉한 교수 얘기다.
70대 후반에 이른 노학자를 모시며 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원래 지난 4월에 예정된 한국 방문이 건강상의 이유로 연기되었기에 더 그랬다). 다행이 내 제자이자 주 교수의 제자이기도 한 북경대 사학과 박사과정의 소동섭 선생이 세 차례 강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잘 안배해주었다. 동북아역사재단과 경희대 한국고대사고고학연구소, 단국대 고대문명연구소의 강연 모두 성황을 이루었다. 고대 중국에 관심이 있는 청중이라면 모두 그 꼼꼼한 강연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어제 단국대 강연에서 주 교수는 상 후기 갑골문과 서주 초기 금문을 중심으로 당시 장편의 서사 역량과 역사 기록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최신 자료까지 세밀하게 제시하며 기원전 12~10세기에 상당히 높은 수준의 기록 관행 혹은 제도가 존재했음을 실증한 강연에서 허점을 지적하기 어려웠다. 다만 그 기록 혹은 서사를 역사 서술 혹은 장르로 손쉽게 등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이론의 소지가 있다.
2시간 강연과 1시간 반 동안의 토론에서 많은 진지한 질문이 제기되었고, 주 교수께서도 거침없이 답변하셨다. 대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유연성만큼이나 우리가 중화주의라고 우려하는 중국 중심주의가 드러날 틈이 전혀 없었다. 학술적 논의 그 자체에 충실할 뿐이었다. 따르고 싶은 멋진 장인의 모습이다.
주 교수 강연 전에 어떤 면에서 어제 단국대 행사의 하이라이트라고도 할 수 있는 간단한 MOU 체결 의식이 있었다. 주 교수께서 이끌고 있는 북경대학 “출토문헌과 고대문명연구소”와 단국대학 고대문명연구소 사이에 상호 학술교류를 위한 협약이다. 두 연구소 모두 처음 체결하는 MOU로, 북경대학 측에서 먼저 제안해주셨다. 이 협약의 실무를 맡은 양쿤(楊坤) 연구원을 비롯한 소장 연구자 세 분이 주 교수와 동행했다.
고대문명연구소의 김석진 연구교수가 단국대를 대표해서, 소동섭 선생이 북경대를 대표해서 각각 한국어와 중국어로 상대방 연구소를 소개하고, 그 간의 과정을 설명했다. 두 연구소를 대표해서 주 교수와 내가 준비된 양식에 서명했다. 주 교수께서 내 중국고대사 연구를 과분하게 칭찬해주시며, 앞으로 두 연구소가 젊은 연구자들의 학술 교류을 위한 디딤돌이 될 수 있길 기원했다. 나도 연륜이 짧고 실력도 부족한 우리 연구소가 명실상부한 세계적 연구소인 “출토문헌과 고대문명연구소”와 본격적 학술교류를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드렸다. 우리로서는 앞으로 진행될 공동 학술 모임에 대한 압박이 더 큰 성장의 계기가 되리라 희망했다.
형식주의에 알레르기가 있는 나 때문에 그럴듯한 현수막 하나 만들지 않았다. 어제 찍은 사진을 받고 보니 채광에 좀 더 신경을 쓰지 않아 아쉽다. 주 교수 일행은 오늘 국립중앙박물관 등을 방문하고 내일 귀국할 예정이다.
이 글은 심재훈 교수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 (원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