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는 비교적 늦은 시기인 제 2 중간기 (기원전 1650-1550년 경)에 말이 소개 되었습니다. 말이 있었다는 물리적인 흔적, 즉 말의 뼈들이 아시아 쪽에서 들어온 인구집단이 세력을 잡고 있었던 아바리스 지역에서는 물론이고 이집트 최남단의 부헨 요새에서도 확인됩니다.
도입 즉시 말은 유용한 군사적 수단으로 활용되었으며, 소수의 엘리트만 말을 사용하거나 소유할 수 있었던 관계로 신분을 드러내는 상징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집트에서 말은 신과 연관되어서 여겨졌던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이집트의 많은 신들이 토착 동물인 고양이나 소, 따오기, 매, 원숭이 등으로 자주 표현되는 것과는 구별됩니다. 그 결과 말의 시신은 미이라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정성스럽게 고급 천을 덮어서 나무로 만든 관에 놓인 말의 시신이 발견된 경우는 있으나, 이 경우에도 말의 사체는 미이라화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말은 종마로 자주 사용되는 현대의 아라비아 말의 직속 조상으로 여겨집니다. 다양한 해부학적 특성들이나 벽화에서 묘사되는 말의 다양한 색깔이 이와 같은 추측의 근거로 사용됩니다. 또한 벽화 등의 묘사에 따르면 이집트에서 각각의 말들은 각자의 이름을 갖고 있었습니다. 예컨대, ‘아멘신의 칙령’, ‘아멘신께서 주신 힘’, ‘아멘신을 위한 용기’, ‘파괴자’, ‘정복자’, 테베에서의 승리’와 같은 힘과 역동성이 느끼지는 이름들입니다.
이집트에서는 말은 탑승용이 아니라 전차나 마차를 끄는 용도로만 사용되었다는 것이 오래도록 정설이었습니다. 이집트의 말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보통은 카데쉬 대전에서 람세스 2세가 전차를 타고 있는 모습과 같은 전차 탑승 장면이 인용되는 경우가 많죠. 고증에 있어서는 최악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이집트 군대가 등장하는 영화 ❬엑소더스❭에서도 군인들은 모두 다 전차에 탑승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를 반증하는 근거들도 많습니다. 사람이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 부조나 그림, 장식들이 계속해서 확인되고 있으며, 아마르나에서는 기마를 위한 마구들도 발견되어 있습니다. 또한 몇년전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아비도스에서 발견된 제 2 중간기 시절의 파라오인 세네브카이의 시신에서는 파라오가 기마에 익숙했던 것으로 보이는 해부학적 증거가 확인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내용을 염두에 두었는지 모르겠는데, 영화 ❬엑소더스❭와 같은 소재를 갖고 만들어진 드림웍스의 1998년 작 애니메이션 ❬이집트 왕자❭에서는 람세스와 모세가 전차에 탑승하는 것이 아닌 직접 말을 타는 장면도 나옵니다.
사진은 18왕조 시대의 파라오 호렘헵 (재위 기원전 1323-1295년)이 파라오가 되기 전, 그러니까 그냥 귀족이었던 시절에 만들던 무덤에서 나온 부조입니다. 현재는 이탈리아의 볼로냐 고고학 박물관에서 소장 중인데, 보시는 것처럼 여기에서는 일반적인 형태의 기마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비문이 없어서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이 장면은 군대의 캠프 모습을 그린 것인 만큼, 물을 길러 오는 병사들 사이로 달려오는 ‘전령’의 모습 혹은 그 물동이 든 병사들의 호위대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글은 곽민수 연구위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 (원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