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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관심 없을 이집트 유물 이야기 #2 : 파라오 덴(Den)의 상아판

곽민수 곽민수 Jul 18, 2020
아무도 관심 없을 이집트 유물 이야기 #2 : 파라오 덴(Den)의 상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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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별 관심은 없으시겠지만, ‘아무도 관심 없을 이집트 유물 이야기’ 2번째 편에서는 아주 오래된 상아로 만들어진 자그마한 라벨을 하나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첨부 사진) 게다가 이번에는 영국으로 갑니다!

이 라벨에는 ‘파라오 덴의 상아판’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이 상아판은 대략 기원전 3000년 경, 그러니깐 ‘고대 이집트 문명이 막 시작된 직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집트 문명기의 초반부에 만들어진 이런 상아판들은 여태껏 꽤 많은 수가 발견이 되었는데, 학자들이 그 시대, 다시 말해서 이집트 문명이 탄생하고 고대국가가 형성되던 그 시기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파악해주는 중요한 자료로 역할을 합니다.

이 유물과 관련이 있는 파라오 ‘덴Den’은 1왕조의 4번째 혹은 5번째(어쩌면 6번째) 왕입니다. 1왕조는, 1이라는 숫자가 보여주듯이 고대 이집트에서 공식적으로 확인되는 최초의 왕조이고, 그런 만큼 덴은 고대 이집트 역사 전체에서도 4-5번째의 파라오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설명이 복잡해서 기억하기 귀찮으시다면, 그냥 ‘엄청 오래된 유물’ 혹은 ‘피라미드보다도 500년 전의 유물’, 아니면 ‘단군 할아버지보다도 700년 정도 더 오래된 유물’이라는 것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덴의 상아판은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이집트학자 에밀리 아멜리누에 의해서 아비도스에 있는 덴의 실제 무덤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사진 2. 아비도스에 있는 덴의 무덤 전경

그러나 당시의 고고학은 그냥 대충 땅을 파서 멋있는 물건을 찾아내는 작업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상아판의 정확한 출토 맥락 같은 것은 기록되지도 않았고, 그렇기에 현재에도 구체적인 유물의 출토 정황은 알 수 없습니다. 유물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프랑스 사람이지만, 이 유물은 결국 영국 쪽에서 입수되어 현재는 영국 박물관 British Museum에서 소장-전시되고 있습니다.

사진으로만 보셔도 금방 쉽게 아실 수 있듯이, 상아판에는 한 인물이 다른 인물의 머리 끄덩이를 잡고 곤봉 같은 것으로 내려치고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여기에서 때리고 있는 인물은 파라오이고, 맞고 있는 인물은 ‘파라오의 적’입니다. 이 파라오가 누군가를 내려치는 장면은 너무나 전형적인 것이어서, 이집트 문명기 내내 지속적으로 사용됩니다. 즉 4000년 동안 이 모티브가 거의 같은 방식으로 계속 사용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40세기 동안 동일한 모티브가 사용되었다니, 정말 놀라울 정도의 문화적 보수성입니다. 이것보다 이른 시기의 것으로는, 현재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에 소장 중인 ‘나르메르의 팔레트’가 100년 정도 전에 만들어졌고,

(사진) 나르메르의 팔레트.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소장. 기원전 3100년 경

이후의 것들은 너무 많아서 생략. 그냥 이집트에서는 온천지 사방팔방 신전의 탑문 부조에서 쉽게 만나실 수 있고, 박물관에서도 오만가지 유물에서 만나실 수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사진) 람세스 3세의 메디넷 하부 장례신전 탑문 부조. 기원전 1150년 경. (덴의 상아판과는 대략 1900년 가량의 시간적인 간극)

(사진) 필라에의 이시스 신전 탑문. 프톨레마이오스 12세 시대. 기원전 110년 경. (덴의 상아판과는 대략 2900년 가량의 시간적인 간극)

상아판에는 이 장면에 이외에도 여러가지 글자들이 씌여져 있습니다. 그러니깐 기원전 3000년에도 이집트에서는 완성된 문자체계가 쓰였다는 이야기입니다. 한반도에서는 그때에 아마 한창 빗살무늬 토기가 사용되고 있었을 겁니다.

아무튼, 상아판의 가장 오른쪽에 있는 글자 혹은 문장은 ‘그가 첫번째로 동쪽을 공격하다’라는 뜻입니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동쪽, 즉 현재의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이 있는 레반트 지역을 이집트의 앞마당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말이죠. 그래서 걸핏하면 동쪽으로 원정을 떠났습니다. 이 ‘덴의 상아판’은 어쩌면 이후에도 밥먹듯이 일어났던 ‘파라오의 동방 원정들’ 가운데 첫번째의 사례를 기록한 유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첫번째’라는 말은 아마 구라일겁니다. 크크크, 왜냐면 이 이후에도 자신의 원정을 첫번째라고 쓰는 파라오들이 계속해서 등장했기 때문이죠. 이집트의 파라오들은 대체로 그렇습니다.

때리는 사람과 맞는 사람 가운데에 위치한, 매가 위에 앉아 있는 직사각형 틀 안에 쓰여진 글자는 바로 ‘덴’이라는 이름입니다. 손모양 글자를 d로 읽고, 물결 모양 글자를 n으로 읽는데, 그래서 dn이 됩니다. 여기에 현대 학자들이 임의적으로 모음 e를 넣어서 ‘덴’이라고 읽게 될 것이지요. 매가 올라가 앉아 있는 저 사격형 틀은 ‘세레크’라고 부르는데, 파라오의 이름을 쓰는 하나의 형식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것 이외에도 ‘카르투쉬’라고 불리는 타원형이 있는데, 이 덴 시대에는 아직 카르투쉬는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카르투쉬가 사용되기 시작하는 것은 3왕조 시대 말 무렵이니, 대략 덴의 시대로부터는 500년 정도 후에 사용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피라미드가 최초로 지어지는 것도 이 무렵의 일입니다.

세레크 아래 쪽에, 보가 구체적으로는 파라오의 왼팔 밑에 있는 글자는 템.센 tm.sn 정도로 읽습니다. 대략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다’정도의 의미입니다. 아마도 파라오가 저 맞고 있는 인물로 대변되는 어떤 인구 집단을 몰살시켰다는 의미일텐데, 그것도 아마 구라일 가능성이 큽니다. 파라오들은 이후로도 수처년 동안 계속해서 동쪽으로 원정을 떠났고, 그때에도 언제나 그곳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죠. 고대 이집트인들은 원래 구라꾼들이었습니다.

상아판의 가장 좌측에도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인카 in-ka 정도로 읽혀지는데, 이건 사람 이름일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 라벨의 주인일지도 모르겠는데, 그랬다면 파라오에게 이 라벨을 하사 받거나, 혹은 파라오를 그릴 수 있는 허가를 받은, 상당한 고위층이 인물이었겠죠. 그러나 인카라는 인물은 아직까지는 역사적으로, 또 고고학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쯤되면, 이 라벨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으로 하고 싶어지는 분들이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말씀을 아직 안드렸지만, 이 라벨의 높이는 약 4.5센티미터, 너비는 5.3센티미터 정도가 됩니다. 그리고 두께는 약 3밀리미터, 거기에 무게는 10그램 정도. 요컨대, 아주 작고 가벼운 물건이라는 이야기죠.

이 라벨의 용도에 대한 단서는 바로 라벨의 뒷면에 있습니다. 뒷면에는….






자, 이것이 ‘덴 상아판’의 뒷면 사진입니다. 저 앞면 사진은 제가 찍은 것이지만, 뒷면은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에 박물관에서 가져왔습니다. 뒷면 우측에는 슬리퍼 모양의 그림이 간략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 학자들은 이 상아판이 슬리퍼 앞쪽에 달았던 장식용 라벨이었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아마 신발을 신고 걸으면 찰칵찰칵 소리가 났겠죠.

이 글은 곽민수 연구위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 (원글 바로가기)

곽민수
고대 이집트의 의례 경관와 사회문화 변동, 그리고 개인 행위수행자와 물질문화의 관계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