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나의 정치체, 즉 ‘국가’가 되어 가던 시절,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서부 해안가 지대의 부족들을 퉁쳐서 ‘블레셋 Philistine’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블레셋’은 레반트 해안에 살던 ‘해양민족들’ 가운데 한 분파였을 뿐입니다. 실제로 성경 이외의 고대 문헌자료에서는 블레셋 이외에도 시킬스, 쉐르덴, 다누누, 웨쉐쉬 등의 집단명이 나타납니다. 이들 가운데 시킬스, 다누누, 블레셋은 20왕조 시절 이집트를 침략했다가 람세스 3세에게 격퇴당한 부족들로 이집트 쪽 문헌에 기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러니까, 널리 알려진 다윗이 ‘영웅스러운’ 돌팔매질로 살해하였던 골리앗이 소속되어 있던 ‘블레셋’과 다윗의 선왕인 사울이 길보아 산에서 피터지게 싸우다가 전사한 ‘블레셋’은 서로 다른 부족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전자는 레반트 해안 남쪽에 거주하는 정말로 ‘블레셋’이라 불리던 집단이었겠지만, 후자는 이스라엘 북서쪽에 거주하는 해양민족의 또 다른 일파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쩌면 ‘블레셋’이라는 이름은 고대 이스라엘인들에게는 ‘오랑캐’ 같은 의미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고고학적으로 레반트 해안에 거주하는 인구집단의 물질문화는 남-북 지역 간에 차이가 나타납니다. 사진 속 토기는 북부의 중심도시인 도르(Dor)에서 발견된 것인데, 이 동네에서는 토기의 채색이 한 가지 색으로만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남쪽에서는 주로 두 가지 색으로 그려집니다. 양 지역의 토기문화는 모두 에게 문명권, 그러니깐 미노아나 미케네 문명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지만, 남쪽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지리적인 이유 때문에 이집트의 영향도 꽤 나타납니다.
도르는 이집트 쪽 기록인 ❬웨나문 여행기❭에서 카르낙 시전의 아멘 대신관이었던 웨나문이 파라오의 명을 받아 레바논 백향목을 구입하러 갔던 곳이기도 합니다. 기원전 10세기 경부터는 레반트에서 이집트가 갖고 있던 정치적 영향력은 참 보잘것 없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이집트가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 버린 것이죠. 그래서 그 이전에는 거의 강탈해오던 백향목을 이제는 돈 주고 사오는 것도 어려워지는 처지가 됩니다. ❬웨나문 여행기❭에서도 도르의 통치자는 이집트에서는 꽤나 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웨나문을 신나게 조롱합니다. 물론 ❬웨나문 여행기❭는 역사적 기록이라기 보다는 소설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당대의 분위기를 엿보기에는 충분하고, 또 이 소설은 이집트인들이 쓰고 읽고 이야기하던 것인 만큼 이집트인들도 과거의 영광스럽던 시대와는 사뭇 달라진 국제 질서를 충분히 실감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죠.
이 글은 곽민수 연구위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 (원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