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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샤룸 반포와 없어진 채무증서

김아리 김아리 Aug 18, 2022
미샤룸 반포와 없어진 채무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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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근동의 경제체제는 현대의 것과는 상당히 달랐다. 당시 시장의 역할은 지금 자본주의 시대에 시장이 가지는 역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았다. 반면, 경제에 국왕이 미치는 영향력은 엄청났다. 그 영향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제도가 바로 미샤룸(mišarum)이다.

미샤룸이라는 제도는 사람들이 진 빚을 탕감해 주는 제도였다. 빚이라고 해도 모든 빚을 탕감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궁궐에 진 빚과 개인에게 진 빚은 탕감을 해 주었지만 사업을 위해서 진 상업 빚은 탕감을 해주지 않았다. 상업빚이 탕감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점은 이 제도의 목적이 민생안정이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빚을 탕감해 주는 제도라는 측면에서는 미샤룸 제도는 이스라엘의 희년제도와 닮아있다. 단, 이스라엘의 희년제도가 주기적으로 이루어진 제도라면 고대 근동의 미샤룸은 왕의 칙령의 형태로 불규칙하게 내려지는 명령이었다. 주로 왕의 즉위년에 내려지고 그 이후에는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시기에 왕의 의지에 따라서 불규칙하게 선포되었다. 때문에 돈을 빌려주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 미샤룸이 아주 큰 스트레스의 요인이었다. 왜냐하면 언제 미샤룸이 반포되어서 자신이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두려움이 생생하게 글에 남아 있는 경우도 있었다. 미샤룸이 반포되어서 빚이 탕감되면 사람들은 빚의 내용이 적혀있던 채무문서를 폐기했다. 그런데 만약 빚진 것은 있으나 채무문서가 없는 경우는 어떠한 일이 발생했을까? 함무라비 왕 시대의 한 법률문헌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준다.

이 문헌에 따르면 후슈슈튬(Huššutum)과 이프카튬(Ipqatum)은 은 1/3미나를 누뚭툼(Nuṭuptum)에게서 빌렸다. 하지만 이 문헌이 작성되고 얼마 뒤 함무라비 왕이 미샤룸을 반포하였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채권자 였던 누뚭툼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문헌을 ‘왕의 칙령인 미샤룸’에 따라서 파괴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문서를 잃어버렸고 때문에 잃어버린 사실을 선서를 통해서 당국에 알렸다. 당시 선서는 신의 이름으로 하는 것으로 선서의 내용을 어길 경우 신의 처벌을 받는다고 믿었기 때문에 법률체계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선서 후 그녀는 이례적인 행위를 한다. 바로 잃어버린 문서 대신에 진흙 덩어리를 깨뜨린 것이었다. 고대 근동에서는 다양한 상징행위들이 신분해방, 결혼과 이혼 등의 행위 시에 동반되었다. 진흙 덩어리를 깨뜨리는 행위 역시도 이러한 법률적 의미를 지니는 상징행위들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진흙 덩어리가 깨어지는 것으로 이 사건은 마무리 되지 않았다.

이 사건에 대해서 알려주는 문헌 CT 48 15는 사실 누뚭툼이 잃어버렸다고 증언한 문헌이 다시 나타나는 상황을 대비해서 쓰여진 것이었다. 문헌의 마지막 부분 증인들의 이름이 나오기 전에 만약 미래에 누툽투가 맹세한 돈과 관련된 문헌이 나타나면 그 문헌의 영향력은 취소되고 문헌 자체는 파괴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있다. 이 문헌은 우리에게 고대 근동 사람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미래에 있을 분쟁상황들을 자신들 나름대로 대비하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표지이미지 출처: DALL-E mini 에서 AI가 자동으로 생성한 그림입니다.

김아리
고대근동의 법제사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상속법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법제사와 고대사에 관심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