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반가운 책이 날아왔다. 숭실대 사학과의 중국 고대사가인 김정열 교수가 국내 독자들에게 중국 고고학 명저 한 권을 선사했다. ❬중국고고학: 구석기시대 후기부터 청동기시대 전기까지❭ (사회평론아카데미, 2019)로, 가뭄 속에 단비를 만난 느낌이다.
이번 학기 대학원 중국고고학 수업의 전반부에서 영어로 출간된 두 권의 고고학 개설서를 동시에 읽었다. 그 첫 번째가 김 교수가 번역한 책으로 2012년 케임브리지대학 출판부에서 출간한 Liu Li & Chen Xingcan의 ❬The Archaeology of China: From Late Paleolithic to the Early Bronze Age❭이다(김 교수가 저본으로 삼은 중문판은 2017년 출간). 다른 한 권 역시 같은 출판부에서 2015년 출간한 Gideon Shelach-Lavi의 ❬The Archaeology of Early China: From Prehistory to the Han Dynasty고대 중국의 고고학: 선사에서 한 왕조까지❭이다.
리우리와 천싱찬은 중국에서 대학 교육을 받은 이후 하버드대학에서 수학하며 K.C. Chang 張光直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중국과 서양의 고고학계를 아우를 수 있는 안목을 지닌 몇 안 되는 중국 출신 고고학자이다. 천싱찬은 현재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의 소장으로, 리우리도 미국 스탠퍼드대학 교수로 연구 인생의 정점을 보내고 있다. 이분들을 유명하게 만든 공저 ❬State Formation in Early China❭(2003)을 내가 번역한 인연이 있다(❬중국 고대국가의 형성❭, 학연문화사, 2006).
두 번째 책을 출간한 중국 동북 지역 고고학 전문가 기디 셀라흐는 현재 이스라엘 히브루대학 교수로 서구에서 가장 핫한 고대 중국 연구자 중의 한 명이다. 히브루 대학에는 중국 고대 문헌에 정통한 유리 피네스Yuri Pines라는 뛰어난 학자도 있어서, 고대중국 연구의 새로운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중국은 세계 어느 지역보다 새로운 고고학 자료를 많이 축적하고 있어서 세계 고고학계의 주요 연구대상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이다.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조차도 자료 업데이트가 쉽지 않을 정도이니, 방대한 분야를 커버하는 개설서 쓰기는 지난한 작업이다. 따라서 영어권에서도 1986년 출간된 K.C. Chang의 ❬The Archaeology of Ancient China고대중국의 고고학❭(제4판) 출간 이후 20-30년 동안의 새로운 자료를 반영한 개설서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러한 기대에 부응한 두 권 모두 아주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내심 국내에서 번역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김 교수의 역서를 손에 쥔 반가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리우리와 천싱찬의 책은 구석기 후기에서 초기 청동기시대인 상대商代까지 중국 전역의 주요 고고학 성과를 망라해서 충실히 정리하고 있다. 고기후와 환경 문제, 농업과 동물사육, 근래에 많은 자료가 축적된 신석기 후기의 다양한 유적들, 중국 학계에서 하나라의 도성으로 보고 있는 얼리터우二里頭 문화 유적, 북방과 중앙아시아의 연관성을 서술한 부분 등이 돋보인다. 특히 중국과 구미 학계의 연구를 적절히 안배한 균형감 있는 서술도 높이 평가받을 부분이다. 얼리터우 유적과 문화에 대해서도 하와의 연관성 문제는 배제하면서 다양한 각도에서 중국 최초의 고대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책이 방대한 자료를 잘 정리한 중국 고고학의 지침서라면 셸라흐의 책은 구미 학자 특유의 도발적인 내용이 눈길을 끈다. 일례로 셸라흐는 얼리터우 유적에 관한 리우리와 천싱찬의 증거 활용이 신중함을 인정하지만, 그들의 주장 역시 얼리터우 국가론을 주장하는 대부분의 다른 연구와 마찬가지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본다.
특히 얼리터우의 대형 건축이 발견된 중심지를 “궁전구”라고 전제해버리는 중국 학계의 가정에 문제를 제기한다. 셸라흐가 보기에 산시성 타오쓰陶寺나 후베이성 스자허石家河 등 신석기시대 후기의 성벽 도시 유적도 얼리터우 못지않은 규모였다. 학자들이 궁전구로 부르는 얼리터우의 담장이 쳐진 중심구가 과연 왕실의 거주지이자 행정구에 걸맞은 규모인지도 의문을 품는다.
역시 많은 학자들이 주목하는 청동 용기의 제작에 관해서도 일단 다른 지역보다 월등한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300년에 걸친 얼리터우 유적에서 획득한 청동기 전체의 무게가 그 직후인 상 초기의 얼리강 단계에서 출토된 대형 청동기 한 점의 무게에도 못 미친다는 점을 강조한다. 더욱이 얼리터우 청동기가 신석기 도기와 유형 상 유사한 점 역시 새로운 국가 출현보다는 신석기 후기 이래의 의례가 지속된 증거라고 본다.
얼리터우 문화의 확산을 그 국가의 군사적 팽창으로 보는 견해에 대해서도 상당히 회의적이다. 따라서 셸라흐는 중원 지역의 사회정치적 궤적에서 한 단계 도약하는 질적인 변화는 얼리터우가 아니라 그 다음 단계인 얼리강문화 시기(상 초기)에 일어났을 것으로 단언한다.
대체로 주요 유적들 위주의 중복된 내용을 다루지만 해석상 상당한 편차를 보이는 두 권의 책 모두가 국내에 소개되면 어떨까 하는 희망을 품어보았다. 지나친 욕심일 것이다. 고대 중국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연구자가 극히 드문 국내의 현실을 감안할 때 김정열 교수의 노고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일이다. 셸라흐의 책 역시 당연히 장점 못지않게 단점도 있다(특히 마지막 두 장인 주대와 진한대를 다룬 부분은 개괄적 소개에 그치고 있다)
주로 한국이나 중국 동북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독자들은 리우리와 천싱찬의 책에 관련 내용이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아 아쉬울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홍산문화의 발전과 쇠퇴나 하가점문화의 속성 등에 대한 저자들의 견해는 충분히 경청할 만하다. 학문의 궁극적 지향점이 우리에 대해서 더 잘 알고자 하는 주관적 측면 못지않게 세계적 보편성 추구에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서 이 책을 살펴보면 좋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김정열 교수의 역서 ❬중국고고학❭을 사서 읽길 바란다.